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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저원가전략(Lower-price strategy)

저원가전략(Lower-price strategy)

 


 

 

 저원가전략(Lower-price strategy)이란 원가를 낮춰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절대적으로 낮은 원가구조를 구성하는 것 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원가를 책정하는 전략을 말하는데 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학습효과, 조업도, 조정비용, 이전 및 모방효과, 통합, 입지, 물류구조, 제도적 요인등 다양한 요소간의 역학적 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 최고경영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전사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고 (2) 단일 원천보다는 여러가지 원천에서 저원가 우위를 창출해야 하며 (3) 다양한 요인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원가절감 효과를 상승시켜야 한다 또한 (4) 규모의 경쟁뿐만 아니라 특허 또는 독점적 공정기술을 활용해야지만 지속적인 저원가 전략을 창출할 수 있다. 차별화전략(differentiation strategy)이란 특정한 시장에서 강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서 세분화 전략과도 대동소이하다. 차별화 전략을 사용하여 제조없자는 같은 특정 상품군의 상표에 대한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며 그 상품 종류에 가용한 상품들을 커버하게 된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경쟁회사의 경쟁을 배격할 수 있는 전략이다. 다만 이 전략은 마케팅비용이 각 개별 segment마다 할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무적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저원가전략과 차별화전략이 동시에 추구되는 것은 이상적인 모습중에 하나이나 실제로 이 둘의 관계는 반비례관계일 경우가 많다. 통산 생산관리의 관점에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 대량생산인데 이것은 과거 초창기 Ford의 모델T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규격화 된 양식을 전후방 통합을 거쳐 대량으로 생산하여 가격대를 낮춘것과 유사하다. 차별화 전략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STP 의 관점으로 접근하였을때는 개별 시장의 독자적 마케팅(별도의 브랜드를 위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total cost는 아이템의 개수에 비례하여 증가하여 그동안의 관점은 저원가 전략과 차별화 전략은 -동시에 발현되었을시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 전략임을 확신함에도 불구하고-상호 반비례의 관계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면 두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차별화 전략을 segment를 나누어 개별의 시장(each market)을 만족시키는 마케팅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시장분석-우리가 학습한 내외부분석-을 통해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발견한 후에 그 시장에 전사적 자원을 집중하여 원가절감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 원천은 회사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일 수도 있고 블루오션(Blue-ocean)의 창출일 수도 있다. 일종의 선점전략(先占戰略)과도 일맥상통 한데, 현재 기존 경쟁자(rivalty)의 경쟁정도가 치열한 시장에서의 차별화 전략은 오히려 새로운 비용을 유발하여 원가상승을 촉진하므로 경쟁정도가 낮거나 없는 new market으로의 진입을 가능케 하는 독점적 차별화을 시행한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의 결과로 만들어진 시장에 전사적 지원을 하는것은 두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new market으로의 전사적 노력을 통한 원가절감과 둘째, 규모의 경제(The Economy of Scales)를 통한 진입장벽 구축으로 후발진입자들의 추격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저원가 전략과 차별화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여 성공을 한 예는 많이 볼 수 있는데, 우선 매킨토시로 Intel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APPLE社가 iPOD이라는 미디어 시장으로 역량을 집중시킨것(최근엔 iPhone까지 진화하였다)이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게 차별화와 저비용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서 기업과 고객 모두에게 가치의 비약적 증진을 제공하는 시장으로 다른 기업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시장을, INSEAD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모보르뉴 교수는 저서 <블루오션전략>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한동안 경영계의 트렌드로 다루기도 하였는데, 쉽게 말해 기존의 치열한 경쟁시장 속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장, 곧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내는 전략을 말한다.

 

조직문화로 인한 기업의 실패 사례와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안

조직문화로 인한 기업의 실패 사례와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안

 

 

 

 

 

 조직의 문화는 조직의 흥망을 넘어 존폐를 가늠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냐에 따라서 조직의 방향이 결정되는 만큼 조직의 문화는 조직의 프로세스나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조직경영에 우선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조직의 문화는 사회적 문화의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진입이나 M&A에서 특히 빈번히 발생하는데,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국에서의 성공모델을 여과없이 가지고 와 토착화에 실패한 기업이 여럿있다. 특히 세계적인 슈퍼센터를 통해 한국의 소매물류업과 "마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문화창출에 기여한 "월마트(Wallmart International)"의 실패사례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1. 월마트 인터네셔널 (Wallmart International)

 

월마트 인터내셔널은 1998년 7월 한국 마크로와 전 직원을 인수하면서 중국에 이어 아시아 시장에서는 두번째로 한국에 진출하였다.

월마트의 슈퍼센터(Supercenter)는 고객들의 바쁜 시간을 감안하여 일반 공산품부터 신선식품까지 한 매장에서 모두 취급하여 편리한 원스톱 가족 쇼핑 공간을 제공하는 매장 형태인데 "언제나 좋은 가격" 이라는 월마트 철학을 근거로 독특한 쇼핑체험을 한국의 고객들에게 제공하였다.

월마트가 세계최대의 유통업체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 데에는 3가지 마케팅 원칙 - 낮은 가격, 지속적인 매장관리, 친절한 직원 - 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첫번째, '낮은 가격'이란 지속적인 비용 관리, 투명한 기업문화, 납품업체와의 협력, 첨단 기술의 활용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고객에게 우수한 품직의 상품을 낮은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월마트의 약속과 노력이다. 두 번째, 월마트는 지속적인 매장관리를 통해 어떠한 상품이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 서비스는 기본 원칙일 뿐 아니라 월마트의 상징이기도 하며 이것은 샘 월튼의 제1규칙인 "소비자는 항상 옳다" 에도 잘 나타나 있다.

 

2. 월마트의 한국 진출 실패 사유

1) 한국인 외면한 미국식 할인점

할인점업계에 따르면 국내 할인점의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 가량은 신선식품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갖가지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주부들이 할인점을 먹여 살린다고 봐도 될 정도다. 하지만 월마트는 신선식품보다는 바코드가 붙은 가공 식품을 매대에 올려놓고 팔았다. 서구인들의 식생활을 고려한 매장 레이아웃을 고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인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다. 뒤늦게 식품 코너를 넓혔지만 이미 고객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팔리지 않는 제품의 진열 시간도 길어져 신선도가 떨어졌다.

월마트가 표방한 창고형 매장도 문제였다. 물건을 실은 파레트가 천정 꼭대기까지 쌓인 모습은 보기에 답답했고 잘 팔리는 물건은 종업원에게 물어봐야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이마트의 경우 매대 높이는 1.4m~1.8m로 낮고 창고 매장과 분리시켜 매장을 밝고 우아하게 꾸며서 월마트와 차별화하였다. 영국 테스코그룹이 대주주인 홈플러스는 한국인을 잘 알아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데, 홈플러스는 삼성 출신의 이승한 사장이 철저히 한국식 할인점 노하우를 경영에 접목시켰다.

신선식품이나 매대 높이는 기본이고 전체 매장의 층을 구분하는 세심함도 발휘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서구식 할인점은 3000여 평 규모의 단층 매장에 모든 상품을 열거해 수평 이동을 지루해 하는 한국인들이 싫어한다"며 "아래 위층으로 매장을 나눠 고객들의 성향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기연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인들은 집, 차, 냉장고 등이 모두 작다. 음식도 조금씩, 자주 먹기 때문에 단일 제품을 다량으로 싸게 파는 창고형 할인점은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사가 잘 되고 사람이 많은 곳의 신선식품은 공급 타이밍이 짧아 그만큼 신선하기 때문에 월마트를 외면한 고객들이 이마트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2) 투자 지연도 실패 원인

월마트의 전체 점포는 고작 16개에 불과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월마트가 한국에 투자한 돈은 8120억여원 수준이다. 까르푸가 밝힌 총 투자액 1조5000억원의 절반정도에 해당한다. 저조한 투자로 월마트는 매장 수를 고작 16개밖에 확보할 수 없었다. 점포 수에서 한국 업체들에 밀리다보니 브랜드 인지도도 낮았다.

월마트는 한국에서 투자를 주저했다. 브라질, 맥시코 등 중남미 국가에서는 확장에 몰입한 반면 한국은 지난 5년간 매장을 7개 늘리는 데 그쳤다. 브라질 법인의 경우 지난 2002년 22개에 불과했지만 2개사를 인수하면서 오늘날 점포 수는 295개로 급증했다. 빠른 의사 결정에 의한 적기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할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를 집행하는 데 있어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바로 실패하는 게 할인점 사업의 속성이다"라고 말했다.

 

3) 까르푸와 월마트의 공통적인 원인

한국을 등지게 된 까르푸와 월마트의 공통점은 우선 양 사는 한국 시장진출 내내 한국인 CEO를 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외국인 임원과 한국인 평직원 사이의 조직 융화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혼연일체가 된다하더라도 시장에서 기선을 잡을까 말까한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핵심 임직원들의 생각이 결국 따로 나뉘었기 때문에 시장장악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토착화에 성공한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의 이승한 사장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유통세미나에서 '삼성테스코의 성공스토리'를 발표하였는데 이 사장은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가 자본을 참여했지만 경영진을 비롯한 직원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며 우리의 유통경험을 역수출하는 한국형 할인점이라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다국적 기업이면서 홈플러스가 토종 할인점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소비행태와 의식에 맞는 서비스와 상품을 한발 빠르게 제공한 결과"라고 자평한다. 자신들의 기준만을 강요하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월마트, 까르푸와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4) 월마트의 시장철수

중국에서 세계적인 유통자본 간의 한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연간 10% 안팎의 고도 경제성장에 내수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중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특히 중국 유통시장이 지난해 완전 개방된 후 세계적인 유통자본의 진출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중국 결전'에 들어간 대표적인 유통업체는 월마트와 까르푸, 로터스, 와트슨 등이다. 이들은 이미 40∼50곳에서 많게는 80개 정도의 점포를 열고 시장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들어 출혈 경쟁까지 벌이며 점포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월마트는 중국시장에 집중을 위해서 한국시장에서 철수하였다.

 

3. 실패원인을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안

소매유통업, 특히 마트(Mart)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통해 주부들의 식생활 문화를 바꾸어버린 사업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게 타켓의 특수성에 대한 연구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특히 의식주 문화는 각 나라별 가지각색인데 과거의 성공경험만을 가지고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묵살해 버리게 되면 그것에서 오는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은 이미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가 답을 내려주었다.

각 해당시장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는 해당국의 직원을 임원으로 채용하여 경영활동의 일선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현 시장에 대한 대안과 대책이 있는 인재들이니 서구의 수용 가능한 장점을 선별하여 토착화 시키면 월마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문화라는 것은 어느 순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니 만큼 해당 문화의 당사자들 간 수많은 교감을 통해서 점점 더 융합되어야 그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다.

블루오션전략과 기존경쟁전략과의 차이점

블루오션 전략은 INSEAD의 김위찬 교수 등이 제안한 모델로서 2004년 책 출판 후 경제서적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며 한창 경영계에 화두가 된 저작의 제목이자 이론의 이름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마케팅이론의 기본인 “차별화 법칙”을 base로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소비자는 기존 상품에 대해 가격, 성능, 서비스 등에서 더 우위에 있는 상품을 선택하게 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기존 시장에 있는 상품과는 새로운 niche market를 찾아 마케팅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것이 차별화 법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두 전략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블루오션전략은 현재 기업이 처해있는 상황을 레드오션이라고 규정하고 경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기존의 경영전략은 현재 조건에서 경쟁기업보다 시장점유율을 높일 것을 주장한다.

 

둘째, 블루오션전략은 경쟁이 없는 아주 새로운 산업내지 기존의 산업에서 확장된 산업으로 진출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기존의 경영전략은 산업내의 경쟁자에 초점을 두고 경쟁자를 제압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 블루오션 전략은 차별화와 저비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반면, 기존의 경영전략은 차별화나 저비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실행하도록 하고 있다.

 

넷째, 블루오션 전략은 비 고객을 찾아 그들의 요구를 찾아 블루오션으로 이동할 것을 주장하지만, 기존의 경영전략은 고객들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스타벅스(Starbucks)와 커피산업의 5-Forces 분석

스타벅스(Starbucks)와 커피산업의 5-Forces 분석

 

 

 

 

 

□ 스타벅스의 역사

 

 ○ 스타벅스의 역사

“스타벅스는1971년시애틀에서탄생했으며현재CEO인하워드슐츠(Howard Schultz)회장이

1987년 스타벅스를설립, 오늘날전세계조직과마케팅에참여하기시작해 현재미국, 캐나다,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영국, 대만, 중국, 뉴질랜드, 쿠웨이트와 전세계공항, 서점, 캠퍼스, 병원등에 라이센스전문점 및 30 여개국 총 6,0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세계적으로 최고의 아라비카산 원두만을 구입해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합니다. 현재 스타벅스 에서는 전미에 걸쳐 8만여명의 파트너가 일하고 있으며 파트타임 근무자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Beans Stock’이라는 스톡옵션을 비롯한 양질의 복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에 대한 복지와 존중, 기업윤리로 스타벅스는 1998년에는 포춘지에 의해 100대 ‘최고의직장’의 하나로 꼽혔으며 클린턴대통령 또한 슐츠회장을 초청하여 스타벅스를 윤리경영의 모델로 칭찬한 바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나스닥에 SUBX로 상장되어 있으며 단시간안에 가장 빠른 주가성장을 보인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스타벅스 코리아

스타벅스 커피 코리아 장성규 스타벅스 커피코리아는 2000년12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커피 인터내셔널의 공동투자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스타벅스는 한국 내 새로운 커피문화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것을 자사의 비젼으로 하며 매월 1개이상의 신규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모든 직원을 파트너로 생각하며 선발된 인원들은 커피전문가과정을 통해 이론교육과 실무교육을 받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품질제일주의, 서비스 및 점포의 차별화로, 단순한 커피전문점이 아닌 점포의 차별화와 경영방침에 맞는 회사운영을 지향하며 단순한 커피전문점이 아닌 제 3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 스타벅스의 마케팅

 

 스타벅스의 고객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경험이 단순히 커피 한 잔을 사먹는 일과는 틀리다고 한다. 스타벅스는 집과 일하는 곳과 다른 제3의 장소라는 의미를 주려 노력한다. 고객은 스타벅스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미국과 다른 국가의 모든 스타벅스에서 커피 등의 음료는 균일한 품질을 제공하는 한편 빵, 케익, 샌드위치 등은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틀리다. 예를 들어 중국의 스타벅스에서는 중추절 기간에 월병을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컵의 사이즈도 차이가 있는데, 미국 외 지역에서는 대형 사이즈인 벤티(Venti)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다. 거의 모든 매장에서 금연 규칙을 준수하고 있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인데, 이는 커피향이 담배향과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일, 일본과 같은 시장에서는 이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다. 몇몇 국가에서는 분리된 흡연 구역을 만들어 흡연가들이 이용하게 하기도 한다.

 

 

□ Michael Porter의 5-Forces Industry Analysis on Starbucks

 

 ○ 5 Forces : competitive force

 

① 기존의 경쟁사들 사이의 경쟁 정도(rivalry)

현재 우리나라에는 스타벅스, 커피빈, 파스쿠찌, 할리스, 자바시티, 자바커피등의 커피전문점이 있으며 몇 년전까지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점표별 매장규모가 66m2~99m2에 이르는 브랜드가 6~7개에 이르며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스타벅스의 경쟁력은 가장 우수하다.

 

② 공급자들의 협상력 (bargaining power of suppliers)

일반 매장에서 판매하는 컵커피, 캔커피는 동서식품에서 한국 판권을 독점하고 있다. 매일우유는 한국의 스타벅스 모든 매장과 컵/캔커피에 쓰이는 우유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원료로 쓰이는 아라비카 원두 역시 본사에서 중앙관리를 하기 때문에 생산, 유통, 판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급자들의 강한 협상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격으로 표면화되는데, 2500원 하는 스타벅스 드립커피(원두커피) 한 잔은 미국에선 약 1500원(1달러66센트), 한 잔에 4300원인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 가격은 미국에선 약 3000원(3달러26센트)이다. 또 국내에서 한 잔에 4300원에 판매되는 커피빈의 카푸치노 싱글 사이즈 제품은 미국에선 약 2785원(3달러)에 팔리고 있다.국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유명 커피 매장의 음료 가격은 본사가 있는 미국 현지 매장보다 최고 60% 이상 비쌌다. 스타벅스코리아 측이 밝힌 최고 인기 메뉴인 카페라떼는 쇼트 사이즈 기준으로 한 잔에 3300원에 판매된다. 이 제품의 미국 현지 메뉴판 가격은 2달러70센트(작은 컵 사이즈인 톨(tall)기준. 미국의 스타벅스 컵 사이즈는 소··대 크기에 따라 tall·grande·venti로 이름붙여 진다. 이하 미국 현지 가격은 모두 tall 기준으로 제시함). 미국에선 가격표에 제시된 상품 값에 다시 판매세를 덧붙여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데, 세금은 주(州)에 따라 7~8%선에 이른다. 가격을 조사한 미국 뉴저지의 경우 세금은 7%. 따라서 카페라떼의 세금을 더한 최종 가격은 2달러89센트가 된다. 6월 초 환율(1달러 대 928원40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원화 2683원이다. 따라서 한국의 스타벅스 매장 카페라떼 한 잔 값은 미국 현지에 비해 비해 23% 정도 비싼편이다

 

③ 구매자들의 협상력 (bargaining power of buyers)

현재 한국의 커피전문점 시장은 매년 그 규모가 성장하고 있고 군소업체들이 난립하여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시장선두기업으로서 스타벅스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위에서 언급한 차별적인 비싼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장선두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런 스타벅스만의 차별화 된 문화와 분위기에 대한 높은 충성도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구매자들의 협상력은 매우 낮은 편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스타벅스의 약점을 침투하여 성장하는 경쟁사에게 이탈되는 고객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④ 잠재적 진입자의 위협 (threat of potential entrants)

스타벅스의 성공요인으로는 럭셔리 마케팅, 독특한 문화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 반대로 스타벅스가 지적받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환경문제(일회용품 사용), 과도한 미국풍에 대한 반감, 혼잡한 매장, 높은 가격 등이 있는데 이러한 약점을 강점으로 내세운 신규진입자들이 사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스타벅스, 커피빈, 투썸플레이스, 프라우스타 등 고가의 가격정책과 마케팅을 앞세운 회사들에 비해서 다빈치(저가격), 힐리야(일회용품미사용), 엔젤리너스(국내브랜드)등 강점을 내세운 진입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⑤ 대체재의 위협 (threat of substitute products or service)

1) 음료로서의 대체재

커피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기호품임에는 틀림없으나 최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웰빙(well-being)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카페인, 고칼로리 음료로서의 커피보다는 0cal(제로 칼로리), 기능성 베버리지 등을 표방하며 나오는 트렌디 드링크는 커피전문점의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2) 문화(이미지)로서의 대체재

앞에서 밝혔듯이 스타벅스가 특히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식 허영문화가 빚어낸 프리미엄 마케팅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때 “된장녀”논란의 중심으로도 유명세를 탔던 스타벅스는 드라마 “Sex in the city"등을 통해 화려한 뉴요커의 모습을 꿈꾸는 여대생들로 하여금 많은 지출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최근 신정아 사태와 같이 한국식 허영주의와 사치주의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점점 반성이 되고 있으며, 고급스러운 분위기에는 호텔 커피숍에 가격에서는 다른 커피전문점에 밀리게 되는 여러 위협에 둘러 쌓여 있다.

과거 스타벅스를 출입하는 사람은 세련된 도시인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오늘날 굳이 스타벅스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로서의 스타벅스의 대체재일 것이다.

 

□ 결 론

 

 아늑하고 편안한 ‘제 3의 장소’를 표방하며 성공신화를 이룬 시애틀의 스타벅스 신화와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독특한 문화와 마케팅, 사회분위기 등을 통해 하나의 트렌드 아이콘이 된 스타벅스는 지금도 엄청나게 성장한 커피전문점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입지를 펼치고 있지만 점점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에 따라 잠재적인 위협요소들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 미국문화라는 세련됨이 젊은이들에게 동경이 되었던 것에 반해 안톤 오노의 사건이나 여중생 장갑차 사건등이 미국불매운동을 야기했던 것 처럼 언제라도 강점은 약점으로 바뀔 수 도 있으므로 스타벅스 역시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 독점적 공급자에 의한 가격정책은 후발주자에게 심대한 약점으로 드러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프리미엄 전략과 가격유연성 전략을 놓고 심도있는 논의를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점점 대형화되고 많은 손님이 드나들게 되면서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라는 애초의 취지는 상업성에 가려지게 되고 그러므로서 시애틀의 mission statement는 토착화과정에서 아주 다르게 왜곡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스타벅스는 최근 특히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와 외부환경에 대한 변화를 인식하고 새로운 기법으로 전략을 수립하여야만 무한경쟁시대인 오늘날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자원준거관점에서 본 이순신장군의 근본적 경쟁력

자원준거관점에서 본 이순신장군의 근본적 경쟁력

 

 


 

 

서(序)

 

경영전략의 모델을 말할 때, 1950~60년대 미국 경제성장기에 있었던 기업임원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군인출신들이 많아서 군대조직과 기업조직이 유사하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실제로 경영학을 보다 보면 전략(Strategy), 전술(Tactics), 워 게임(War-game), 시나리오(Scenario)등 군사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이 비단 20세기에 나타난 이론이긴 하지만, 과거의 전쟁사를 보는 것은 오늘날의 경영전략을 이해하는데 좋은 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관학교의 교재로 쓰이던 병법서인 손무의 <손자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등은 사회과학서로 분류되어 있고 그밖에 많은 역사의 사례들은 오늘날 기업경영에 적잖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현대 전술의 개념

 

전쟁의 승패는 부대의 자원(Resource)활용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창의 끝에 해당하는 전투부대(Combat Unit)는 전투지원부대(Combat Support Unit), 전투 근무 지원부대(Combat Support Service Unit)의 반의반에 해당하는 규모인 만큼 군수자원과 전쟁지속능력은 현대 전투의 핵심이다. 더욱이 최근의 걸프전을 비롯해 동티모르 내전, 이라크 전등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전쟁지속능력의 핵심은 국가의 경제력에 달려있으며 자원조달 및 전시인력동원 능력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을 미치고 있다.

물적 개념의 자원 외에도 지적개념의 자원 활용도 현대전의 핵심인데 이는 비대한 군대 조직의 Process의 문제이기도 하고 정보자원 및 지적자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컴퓨터의 발달로 얼마나 고가치 표적에 대해 효율적으로 타격하느냐가 현대공격전술의 핵심이므로 각국은 재래식 인간정보를 넘어 군사위성, UAV(무인정찰기)등을 도입하여 적의 표적정보를 조금이라도 먼저,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식은 역사를 통해 발전 한다고 하지만 과거 이순신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오늘날 전술학이나 경영학,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여러 이론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성웅 이순신

 

조선 최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에 나타난 이순신의 업적은 역사라기 보다는 신화에 가깝다. 그는 평민의 아들로 32살의 뒤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서 승승장구하고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동안 23전 23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일본의 침략에서 조선을 지켜내었다. 그는 흔히 무장(武長)인 원균과 대비하여 지장(智長)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의 전술과 전략은 오늘날의 모든 군사학 교재에도 나올 만큼 혁신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사회과학의 관점으로 보았을 경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그는 주어진 인적, 물적, 조직적 자원(resource)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일본군에 대하여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창출하였는데 대표적인 몇가지 전투를 통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옥포해전 (1592.05.07)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20일이 지나 발생한 최초의 전투인 옥포해전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면이 많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100년간의 통일내전으로 인해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은 피폐한 환경에 적에 대한 거의 무지한 정보로 인해 앞이 캄캄했다. 여기서 이순신이 채택한 전술은 바로 “화력의 집중”이다. 당시 일본의 주 무기였던 조총의 사거리는 조선의 화력무기인 총통의 사거리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순신은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화력을 집중하여 완전한 승리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보력의 우위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통합 화력집중을 통해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전략의 승리이기도 하다.

 

사천해전 (1592.05.29)

 

사천해전에서는 조선의 비밀무기이자 세계최초의 철갑선으로 불리는 거북선이 등장하였다. 물론 이것의 등장으로 전쟁의 주도권이 바뀌어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옥포해전과 마찬가지로 사천해전을 준비하면서도 이순신은 다양한 조직 관리(Organizational Management)를 통해 내부역량을 강화하였다. 그는 민간인으로 축출된 격노병 중 경력자를 뽑아서 대장장이, 목수 등의 임무를 부여하여 전투를 준비하였고 각 지방에서 데리고 온 목수들과 함께 이 비밀병기를 제작하였다.

 

전형적인 In-sourcing의 형태로 당시 피폐한 조선상황에 따라 전쟁물자의 원가절감을 위해 많은 노력을 시도하였음을 가늠하게 한다. 또한 거북선은 정보력의 승리이기도 하였는데, 당시 일본 해군의 전투양상은 해군이라기 보다는 배를 탄 육군에 가까웠다. 세키부네나 고바야부네등 적선에 칼로 무장한 군인들은 빠르게 근접 후 월선하는 방식의 전투를 하였는데 이에 착안하여 이순신은 월선행위 자체가 불가능 하도록 배의 갑판을 철침으로 덮어버리는 전략을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적의 화살공격에도 큰 피해를 입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율포해전 (1592.06.05)

 

당시 전공(戰功)은 적의 목을 베어오는 것으로 평가하는 제도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배에 머리를 자르는 작두를 가지고 다니는 배들이 있었고 허위로 공적을 과장하기 위해 조선인의 시체를 잘라 공적으로 올리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순신은 지나친 전공다툼을 우려했다. 그는 언제나 개인전공보다 전체의 전황을 중요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매우 엄정한 군기를 유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인적자원관리의 핵심이다. 해전이 한창일 때 적병의 목을 베기 위해 싸움은 뒷전인 채 바다 속을 뒤지는 지휘관들에게 엄벌을 처했다.

 

율포해전 당시 이순신이 가덕도까지 보낸 척후병이 척후임무를 초과하여 적과 전투를 치루었고 적의 목까지 베어왔으나 이순신은 그들을 엄히 군율로 다스릴 것이라 다그치고 다시 바다로 내몰았다. 당시 수군은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이 연합함대를 꾸리고 있는 상태여서 연합수군의 팀워크는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절대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기에 엄정한 군기를 유지했다. 결국 이 해전에서 적의 목 보다 더 값진 적선 3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개인의 욕심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결과였다. 그가 조선전체의 수군을 통제하면서도 항상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런 철저한 조직관리 방법 일 것이다.

 

 

한산도대첩 (1592.07.08)

 

한산도대첩은 수적인 열세(56:73)에도 불구하고 학익진(鶴翼陣)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활용하여 아군의 피해 없이 적선 47척을 격침하고 12척을 나포함으로서 세계3대 해전으로 손꼽히는 전쟁사의 드라마이자 임진왜란 해전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영학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적자원 활용이다. 사실 학익진과 같은 방식은 오래전부터 보병전술로 널리 쓰이던 전술이었다.

B.C.216년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도 같은 전술로 7:1의 병력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순신은 최초로 이러한 진법을 해상에서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자원관리(Resource Management)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지적관리일 것이다. 율포 해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고가치 정보와 적의 첩보를 배합하여 ‘이겨놓고 싸우는’ 전술을 구사하였고 이것은 오늘날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산포해전(1592.09.01)

 

이순신 장군의 효율적인 자원의 집중과 분산을 잘 활용한 재배분(Resource allocation)이 두드러진 전투이다. 당시 해상장악권은 조선의 수군이 어느정도 이루었으나 육지에 있어서는 전라도 공격에 나선 일본군들이 1,2차 금산전투에서 1500여명의 의승병들을 전멸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부산포는 적의 해상거점임과 동시에 적의 육군의 보급을 담당하는 군수거점이었다. 서두에 말한대로 전투는 식량, 군수품등 전쟁지속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선 유지가 필수적인데 그러한 의미에서 부산포는 매우 중요하며 피해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당시 삼도수군의 판옥선은 80여척에 불과하였으나 일본은 500여척에 달해 수적으로는 절대 열세였으나 상황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순신은 전면전을 결심하고 조선수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육지에 거점이 있는 일본과는 달리 선상에서 전투를 끝내야 하는 약점이 있는 조선해군은 폭풍이 부는 날을 피해 최단시간으로 목표상에 갈 수 있는 날을 택했고, 화력의 꼭지점인 2대의 거북선을 선두로 함대를 1열 횡대로 이동시키는 장사진(長蛇陣)을 펼치며 총통을 쏟아 부었다. 결국 130여척의 적선을 수장시키며 임진왜란 최대의 전과를 이루게 되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아사와 식인행위가 빈번하였고 변변한 훈련도 힘들 정도로 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이순신은 아껴야 할 때와 써야 할 때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결국 그러한 집중이 최대규모의 전투에서 성과를 이끌어 내게 되었다.

 

 

 

결론

 

성웅이라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용맹한 무장과 인자한 덕장임과 동시에 뛰어난 현자이었음에 분명하다. 그의 언행은 오늘날 경영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어긋남 없이 매우 훌륭하였는데 특히 “전쟁”이라는 상황 하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자원(Resource)"의 활용에 있어서 매우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인적 자원 활용에 있어서 그는 엄정한 신상필벌과 군기유지를 통해 추락한 군의 사기를 극대화 시켰으며 원균 및 중국의 여러 함대들과 연합함대를 구축했을 때에도 탁월한 리더십과 통솔력으로 승리를 일구어 냈다. 또한 휘하의 장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당시로서는 과감한 권한위양(Empowerment)-독자적인 작전수행을 허락함- 을 통해 선진적인 조직 관리를 꾀했다. 물적 자원 활용에 있어서도 그는 효율적인 부대운영을 강도 높게 실시하였는데 더욱이 열악한 조선의 경제상황과 수군의 상황 하에서 그는 여러 차례 현명한 지혜를 강구하였다. 대민지원이나 경력자 활용, 자체 교육 등을 통해 in-sourcing을 실시함으로서 운영비의 절감을 실시했고 그 결과 전투에서 충분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지적 자원 운영에 있어서 그는 매우 훌륭하였는데 임진왜란의 성패를 가늠한 가장 중요한 ”정보력“에서 그는 절대 우위에 포지셔닝 하였다. 그는 다양한 전령과 통신수단, 첩보를 통해 시시각각 일본의 부대와 무기체계, 내부정보를 파악하였으며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여 전투 시 적의 다양한 의도를 무력화 시켰다.

 

이렇듯 전쟁의 모습이 경영의 모습과 많이 닮은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영웅 시 해야 하는 경영자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그는 용맹하고 지혜로웠으며 때론 인자하고 때론 엄한 모습을 한 위대한 경영자였다. 그는 도산위기의 회사에서 명예퇴직 당한 후 회장의 명에 의거 복직하였으나 이내 자신의 사업부를 성장시켜 경쟁자들과의 시장점유율에서 절대적인 경쟁우위를 지켜낸 그런 사람이었다.

"경영의 세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경영의 세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경영의 역사가 주는 의미

 

일찍이 E. H. Carr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며 또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미래의 그것을 인과율적으로 도출시키는 원인이 되고 오늘날 당면한 문제들도 역사의 사례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에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경영학은 20세기에 와서야 그 체계가 잡힌 새로운 학문으로서 지난 100년간의 “경영의 세기”는 그야말로 격동과 변화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만 이것들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인류의 문화사를 고스란히 담아 정제해서 나온 학문이기에 우리는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신학문(新學問)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의 규모는 날로만 커져 가는데 주먹구구식으로 Top-Leader의 취향에만 맞추어 관리되던 거대 조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탄생하였고, 테일러이즘에서 결여된 휴머니즘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존중의 경영이 나타난 것처럼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문제의 원인을 말해주고 또한 지금의 문제를 극복하는 미래의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거울이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라고 까지 말하기에는 비약적이지만- 수많은 사례연구(Case-Study)를 통해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 환경 속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과거의 기업조직들은 -소수의 선견지명을 가진 기업들이- 격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 흐름에 적응하고 선점하여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마치 환경에 적응한 종(種)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사멸해 버린다는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설의 이론처럼 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기업조직을 하나의 생물체로, 시장을 일컬어 “Jungle"이나 ”Safari"로 묘사하는 일부 학자들의 표현과도 일맥상통 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업들은 이렇게 변화에 순응하여 위험요소를 피해감으로서 “생존(Survive)"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달로 고도의 정밀한 예측과 분석이 가능한 시대에는 ‘어떻게 살아남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의 관점에 더욱 무게중심이 실릴 것이다. 물론 사회문화의 다양화로 불확실성은 증대되었으나 그에 비례하여 다양한 시뮬레이팅(Simulating)과 시나리오 게임(Scenario game-War game)도 대비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러한 관점에서 이 “경영의 세기(The Management Century)"는 상당히 시사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경영학은 그 짧은 역사로 인하여 특유의 이념이나 철학이 짧은 기간 동안 유행하고 사멸되는 Trendy한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그동안 과거의 기업이나 경영자의 모습을 그린 책들은 하나같이 기업이나 기업인의 등장과 쇠퇴, 기업의 거대 프로젝트, 전기적인 모습 등을 나타내는 데에만 국한되었으나 지난 100년-경영학의 모든 역사-동안의 연속적인 흐름(Flow)을 설명해주는 몇 안되는 저작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더욱이 번역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의 기업사는 6.25 동란과 군부정권시절, 그리고 민주화와 올림픽, 월드컵등 근대사회사의 변화에 따라 급격하게 변했었으나 그 큰 사조는 미국식 경영학의 흐름을 계승받고 있으므로 큰 이질감 없이 우리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통해 우선 책에서 강조하는 시대별 특징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고, 그 시대의 변화의 흐름에서 우리가 염출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경영의 세기 (The Management Century)

 

1900-1910 과학적관리(Sciencific Management)법의 대두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20세기로의 전환기에서 경영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엘리후 루트(Elihu Root, 1845~1937; 前미 국방장관)나 앙리 페욜(Henri Fayol, 1841~1925; 프랑스의 광산엔지니어)의 사례를 초기 경영학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역사란 것이 칼로 무 썰듯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위의 사례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경영(Management)라기 보다는 행정(Administration)의 성격이 짙었고 관리적 성격의 매니지먼트는 사실 그 이전 시대-근대 유럽의 상법, 중세 대상인들의 관리나 고대 로마 혹은 그리스의 역사적 기록-에도 어느정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근대 경영학이 태동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의 “과학적 관리법(Sciencific Management)"를 그 시초로 보는데는 이견이 없다. 사실 그의 방법론은 오늘날에도 시사해 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 고도로 조직화 된 기업이나 창의적인 활동이 필요한 집단에서는 보다 다양한 경영기법이나 관리기법이 요구되지만 때때로 무질서와 규칙이 없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스톱워치기법”이 오히려 더 요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즉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기법은 다른 기법들이 선행되기 전에 전제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며 휴머니즘은 자율권의 무분별한 확대라기 보다는 일정한 방법(과학적 관리법등)을 통해 규칙적인 규율과 질서가 선행되어야지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볼때에도 정부가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켜줄때 기업은 보다 자율적인 환경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정부’와 ‘법’이라는 것이 없는 무규칙상태에서는 궁극적으로 성과가 증대할 수 없기에 국제법과 상거래법이라는 룰을 적용해야 한다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 한 것이며 실제로는 알다시피 테일러이즘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의 그 유명한 “모던 타임즈”에서 비유하듯이 인간을 기계부속의 일부처럼 사용하려던 20세기 초반의 경영자들은 결국 후대에 큰 비판과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1911-1920 헨리 포드와 모델 T

 

경영학에서 유명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헨리 포드(Henri Ford, 1863~1947)와 모델 T의 이야기는 본 책에서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알듯이 이 사례에서는 두 가지의 큰 의미를 배울 수 있는데, 하나는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의 성공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한가지의 모델만 고집하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해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한 실패사례이다. 그 외에도 부품과 공정의 표준화(Standardization)나 탄력적 임금제,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등 오늘날에도 시사점이 많은 사례들이 있으나 일단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이 두가지의 커다란 카테고리일 것이다.

‘포드 시스템(Ford System)'이라 불리우는 자동화(Automation)설비와 공정의 전문화, 특히 규격의 표준화(Standardization)는 오늘날에도 기업들의 주요 관심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 당시에는 생산과 관리의 효율성 증대를 위하여 이것이 실시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장 주도권 선점과 특허권(Lotalty) 확보를 위해 세계적인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선도하기 위해 끊임없는 R&D 투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의 자동화 시스템은 테일러리즘에서 진일보(進一步) 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테일러가 스탑워치를 통해 시간을 통제함으로서 목표량과 능률을 관리한 것에 비해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작업의 분업화를 통해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킴으로서 생산설비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렇듯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1차 세계대전 직후 지구상의 모든 자동차의 절반을 단 한 개의 기종-모델 T- 으로 독식한 포드의 몰락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포드의 몰락을 분석해 보자면 크게 두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우선, 최고경영자의 잘못된 경영전략(정책결정)이 회사를 어떻게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된다. 저자가 말하듯 헨리 포드는 창의적이고 정력적인 사람임에는 분명하나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지금에서야 이사회나 주주총회, 정부나 NGO등 다양한 기구가 TOP LEADER의 독점적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으나, 극심한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 있던 CEO의 말 한마디에 모든 회사의 역량이 좌지우지 되던 시절에 발생한 한 사람의 판단과 고집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였는지 귀감이 된다. 다른 하나의 교훈은 -물론 이것역시 포드의 잘못된 정책결정이라는 첫 번째 교훈에 포함되지만-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마케팅방식의 오류이다. 물론 포드의 실패이후 경영학의 화두는 회사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포드는 철저하게 회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출고량을 더 늘릴 수 있을까’의 생각만 했지 ‘소비자는 과연 ~’ 이라는 client 중심의 판단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고객의 니즈(needs)라는 현대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다양한 모델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 경쟁사에 시장선두를 내준 이후 오늘날 까지도 선두를 탈환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래저래 큰 교훈을 준다.

 

 

1911-1930 조직개념의 형성과 인간존중의 경영문화 태동

 

위에서 언급했듯이 포드의 성공과 실패 사례는 동시대 경영자들에게도 적잖은 메시지를 주었다. 독재문화의 폐단과 성과중심의 운용은 많은 이론가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였고 특히 점점 성장해가는 경영자교육을 통해 나온 학자들이 이론과 실천사이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하에서 1人이 아닌 조직적 사고의 출현과 기계적 소모품이 아닌 인간존중(人間尊重)의 경영문화의 태동은 역사적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체스터 버나드(Chester Barnard, 1866~1961)는 조직개념형성에 있어 선구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그는 “공동체에서 모든 개개인과 조직의 행동은 직간접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이다”라는 주장을 통해 오늘날의 이른바 전체론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이론 중 테일러와 가장 극명히 대비되는 것은 그는 노동의 세계에 도덕적(윤리적) 차원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경영자만의 책임은 단순히 복잡한 도덕적 규범에 순응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덕적 규범을 만들어 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그의 선구자적 연구는 자연스레 과학적 관리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경영은 단지 효율과 비용, 그리고 생산성 등 회사의 관점에만 초점을 두었지 일의 능률이나 직무만족 등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많은 관심이 부족했다. 특히 오늘날의 -직무만족이 생산성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의 초석이 되었던 엘튼 메이오(Elton Mayo, 1880~1945)의 호손 실험은 향후 경영학의 연구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호손실험은 잘 알려진 대로 작업환경의 여건은 생산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대신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관심이나 소속감등이 작업능률을 더욱 향상시켜준다는 결과를 도출한 일련의 연구인데, 결과적으로 이 연구를 분수령으로 경영관리에 있어 인간 관계론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회학과 심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시민의식의 성장과 인권문제의 대두로 직무환경은 기업의 직면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교통, 보육, 직원 교육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통해 직원만족도를 높이고 애사심을 갖게 하는 것은 -성과에 있어서도 물론이고- 정설(statement)이 되었다.

 

 

1941-1960 경영학의 비약적 발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사회ㆍ문화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였지만 기업과 경영학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기업은 전에 없던 우발적인 상황에 대해 민첩하게 위기관리를 하면서도 오히려 그 상황을 기회로 이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전시(戰時)상황은 생산과 소비의 폭발적 증가를 발생하여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게 되었다. 발빠른 기업들은 시대상황에 맞게 군수물자로 아이템을 바꾸어 납품하기도 하였으며 자사제품에 대한 전략적 홍보를 통해 군(軍)의 특징을 이용하여 대량 납품을 이루기도 하였다. (코카콜라, 스팸등)

어쨌든 이러한 비정상적인 생산, 소비 활동을 겪으면서 기업도 사회도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게 되었다. 군수품을 조달하던 대기업들은 많은 수익을 올렸으며 또한 대량생산 경험을 통한 물류관리, 생산관리, 재고관리 등의 기법에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전쟁이 마치고 50년대에 이르자 미국에는 편리함과 물질적 부유함이 찾아왔다. 기업은 재무적 성과와 더불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수요에 상품을 연결하기 위한 상품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마케팅의 이념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테드 레빗(Ted Levitt)등 오늘날 경영학 교과서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이들과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 1906~1964),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 프레데릭 헤르츠베르크(Frederick Herzberg, 1923~)등 속칭 동기부여 3인조라 불리는 이들까지 수많은 경영학의 선구자들이 이 시대에 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었다.

 

 

1961~1990 전략경영의 발전

 

 기존의 ‘경영정책(Business Policy)'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탄생한 전략경영의 시작은 그 기원을 60년대로 보고 있다. 초기의 전략경영은 조직이론을 배경으로 탄생하였으며 Chandler(1962), Andrews(1965), Ansoff(1965)등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초기 이론의 기본개념이 형성되었다. 초기 경영전략 이론의 핵심은 “장기전략계획”이였는데 사실 그 내용은 재무관리과 생산관리가 주를 이루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경제량이 급속도로 팽창하여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시대였다. 기업은 단기 및 중장기적 경기예측이나 시장수요에 대한 투자계획이나 재무/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만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재무관리, 인사관리, 생산관리, 회계관리, 마케팅관리 등 다양한 업무분야를 전사적으로 통합하여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의 요구가 더욱 절실해 졌다. 기업에 종합기획실이 처음 도입된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중장기적 판매계획에만 집중하던 60년대의 미국기업들은 70년대에 이르러 예측하지 못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globalization의 파급으로 기업 외부의 환경(특히 예측 불가능한 외국의 돌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국제문제들이 국내경제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그 정점에 두차례의 오일쇼크가 있었는데 결국 당시의 경영진들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plan을 쫓아가는 것 보다 우발적이고 시사각각 변하는 경기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절실히 요구받게 되었다. 그리고 각 단위부서와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민첩성과 유연성을 공유하기 위해 기업조직원 전체의 전략적 사고방식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확장된 전략개념은 inductive(귀납적)한 연구에서 systematic observation(체계적인 관찰), deductive analysis(연역적 분석)와 modeling(모델링), 실증적인 테스트로 진전되었고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산업구조와 외부환경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직상으로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으로부터 전망이 좋은 사업으로 다각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다른 우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즉각 반응하려는 시도의 결과물로 되었다. Mintzberg, Rumelt, Hofer, Quinn, Bower, Camerer, Porter등의 학자들이 이 시대에 많은 연구저작을 남겼으며 특히 ①전략형성과 실행방법에 대한 기술적 연구(Lindblom, Quinn, Minzberg) ② 전략적 선택과 성과(content)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기업성장과 다각화 전략, 사업전략, 경쟁전략&경쟁우위)등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또한 미국 경제의 침체와 일본 경제의 성장이 세계경제의 화두가 되면서 경영기법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접근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1991~현재 혁신(Innovation)

 

오늘날 기업생존의 키워드는 “혁신”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가히 “정보의 홍수”, “정보의 바다”의 시대를 실감하게 한다. 21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제3의 혁명이라는 정보화 혁명을 겪게 되고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기업의 전략방향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경영진들은 시장 및 기술의 변화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민첩하게 반응해야 하고 수확체증의 법칙(increasing returns), 네트워크 경제성(network economy)이 가져오는 전략적 의미에 대한 연구를 촉진 시켰고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한 연구를 경영전략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또한 global standard를 구현하기 위한 산업표준화, 산업에 있어서의 전략적 제휴가 강조되고 네트워크형 기업조직(network organization), 가상조직(virtual organization)이라는 새로운 개념들도 강조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WEB2.0 시대의 개막으로 사회는 종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를 하고 있으며 Prosumer, UCC, Blog등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용어들이 사회학의 범주에 종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 조직은 “학습조직”화 되어 스스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제 산업은 컨베이어벨트나 초시계가 아닌 인간자원(Human Resource)의 지식경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 아닌,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데이터분석과 프로그래밍에 머리를 싸매고 있으며 적도 동지도 없는 제휴와 M&A, 지형적 기반이 없는 다국적 기업 등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새로운 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새로운 경영의 세기 (New Management Century)

 

우리가 “경영의 세기”라 불렀던 20세기는 이제 지난 세기가 되어버렸다. 과거 1000년 보다 더 많은 것이 변했다는 지난 100년. 그리고 그 100년 보다 더 많은 게 변해버린 21세기의 10년 동안 때론 조직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조직이나 리더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대로 경영의 세기에 살아남았던 수많은 선배들이 그들의 선배들이 경험한 실수를 토대도 성장하였던 것처럼 우리들 역시 역사를 거울삼아 “새로운 경영의 세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애플의 사례에서 본 "혁신"의 의미와 요소

애플의 사례에서 본 "혁신"의 의미와 요소

 

 

 

 

 

 

1. 서 론

 

“혁신”. 오늘날 경영학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이렇게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혁신을 외치고 있다. 피터 드러커도 잭 웰치도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모든 경영자들이 혁신 또 혁신만이 살 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마치 혁신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어있다.

“혁신(革新)”이란 이전의 관습이나 행동양식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의미인데, 보수적 기성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을 관습적으로 요구받고 있으며 성장을 위한 조건이 아닌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것의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혁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산업계에서는 그 중요성이 발견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프레드릭 테일러와 헨리 포드는 생산관리에 초점을 맞추었고 피터 드러커, 필립 코틀러, 테드 레빗은 인적자원관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잭 웰치도 혁신을 강조하긴 했으나 그는 아날로그적인 경영자였다. 빌 게이츠는 세계최고의 부자이기는 하나 존경받는 경영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한 그가 존경하는 단 한명의 경영자가 있으니 그는 “창조적 혁신(Creative Innovation)"하나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며 디지털시대를 선도하는 트렌드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창조경영의 모범이 되는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 애플의 ‘가장 창의적인 CEO' 스티브 잡스이다.

 

 

2. 혁신의 의미

 

2.1.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革新, Innovation)"이란 사전적 의미로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의 뜻으로서, 특히 경영학에 있어서는 “기술혁신에 수반하여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영상의 전반적인 혁신”을 의미한다. 지난 세기 일어난 기술혁신은 자본, 노동, 유통, 생산, 관리방법 등 모든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커다란 기업위험(企業危險)을 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뒤지면 경쟁에 패배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기술혁신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경영방법으로는 불충분하고, 따라서 혁신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즉 기업의 혁신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뒤집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지난 한 세기 간 일어난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은 인류의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놓았다. 하지만 사회변화의 속도에 비해 경영방법의 발전은 빠르고 민첩하게 변하지 못하였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유명한 그의 저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형질이 후대로 전해져 내려올 때) 자연선택을 통해서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주변 환경에 적응한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자연도태설의 핵심인데 이 이론 역시 오늘날 생물학 뿐 아니라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들의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하고 말았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포드는 오늘날까지 시장선두를 50년이 넘게 탈환하지 못하고 있으며 애플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 역시 오늘날 윈텔(Windows+Intel)의 아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적 열세를 당하고 있다. 자연친화적 화장품을 선보인 The Body Shop은 성공하였으나 광양제철소 앞에는 환경단체들이 오늘도 시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사회 환경의 변화는 그것에 빠르게 적응한 기업은 성장시켰으나 그렇지 않은 기업은 철저히 도태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시대의 요구는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기업의 형태와 모습도 실시간으로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가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 있어서 변화와 혁신은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핵심이며 기업존망의 성패가 달린 일임을 기업가들은 명심해야 한다.

 

1.2. 혁신이 필요한 이유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혁신은 그 자체가 기업의 당면과제요 존재이유이다. 변화는 지금도 쉬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데 기업은 팔짱끼고만 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혁신이 필요한 이유에는 생존의 문제도 있지만 부차적으로 성과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시장선점을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는 대형 컴퓨터 회사가 장난감 정도로 여기던 소형 컴퓨터 “애플”시리즈를 선보여 PC(Personal Computer) 라는 시장을 “창출(Create)"했다. 수십 장의 프레임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 애니매이션을 만들던 영화시장에 “토이 스토리(Toy Story)"라는 첫 CG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강력한 경쟁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다운로드가 성행하여 음반시장이 위축되었을 때 그는 온라인 음반시장(아이튠즈 뮤직스토어)을 창출하고 애플의 전통이었던 매킨토시에서 MP3플레이어 “iPOD"로 주력상품을 변화시킴으로서 현재 세계 mp3 player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렇듯 혁신은 단순히 사업 다각화의 경우가 아니라 ①회사의 전사적 역량을 전환하는 것이며 ②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선점하는 행위인 것이다.

최근 iMAC이 선전하고 있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컴퓨터 분야의 시장점유율은 윈텔의 아성에 막혀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애플이 컴퓨터 사업을 주력으로 고수하였다면? 그가 넥스트社에서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티브를 위대하다고 보는 이유는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게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그곳을 창출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현재의 위기 상황을 혁신하여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과도 같다.

 

1.3. 오늘날의 경영혁신

 

한때 잭 웰치 와 GE를 통해 “6 sigma"가 유행처럼 번진 것처럼 최근에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통해 “창조경영”, “혁신경영”이 우리 기업에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영혁신은 소극적인 형태와 적극적인 형태의 혁신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내부환경, 업무 프로세스, 기술의 부분의 혁신적 전환을 뜻하고 후자의 경우 사업영역의 전환, 업종의 변화 등 거시적인 변화를 뜻한다. (물론 기업의 핵심역량을 바꾸거나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늘날의 경영혁신은 단순한 품질과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한다. ‘혁신을 하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모든 기업이 사운을 걸고 혁신전담 TF를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혁신은 비단 기업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관료적인 정부조직과 전통적인 비영리조직에서도 “혁신”은 상식이 되어버렸다. 정부기관에서의 혁신은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와서 하나의 슬로건처럼 모든 행정부에서 부르짖고 있는데 업무효용성과 고객만족도 향상을 목표로 두고 있다. 민원부서는 물론이고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교직, 법조계, 군조직등에도 각자 조직에 부합하는 혁신 목표를 설정하고 실시하고 있다. 이렇듯 “혁신”은 하나의 포맷으로서 주어진 과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숙제와도 같은 존재이다. 다이어트를 하듯 프로세스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정리하고 조직의 핵심역랑(Core Competency)을 두각하는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3. 혁신의 요소

 

혁신을 구성하는 요소는 어느 특별한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그것들은 어느 순간, 특정인에 의해 일어난다기 보다는 혁신을 주도하는 특정인(대부분 리더)의 행동을 중심으로 그것을 실현하게 하는 조직의 환경과 각개 구성요소들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서 발전하게 된다.

이것들을 분류해보면 혁신에는 크게 3가지의 요소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각각 ‘개인적 요소’, ‘조직적 요소’, ‘관계적 요소’라고 요약할 수 있다.

 

3.1. 개인적 요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혁신은 어느 영웅적인 1인의 혁신가에 의해 일어난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오늘날 기업에서 영웅시 되고 다른 수많은 후배들로 하여금 하나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고 있다. 기업경영에서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인사인 잭 웰치나 스티브 잡스, 피더 드러커, 카를로스 곤등의 경영자는 오늘날 기업인이나 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혁명가적 영웅에 가깝다. (실제로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나 파산직전의 닛산을 회생시킨 카를로스 곤의 이야기는 경제사라기 보다는 영웅담에 가깝다)

물론 어느정도의 영웅화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실제로 그들의 실적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고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 가져야 할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3.1.1. 카리스마

 

흔히 “카리스마”라고 하면 사람을 복종시키는 권위적 힘(force)을 생각하겠지만 이런 혁신가들이 가진 카리스마는 -다른 사람과는 좀 다른- 그들의 특별한 능력이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혁신경영의 대가 스티브 잡스는 흔히 비교되는 빌 게이츠와 달리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빌이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다니고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는 기업을 세우는 동안 스티브는 평범한 집안에서 반항기 많은 소년시절을 보내고 히피문화와 선불교등에 심취하며 평범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고집쟁이 였으며 울보였다. 쉽게 흥분을 잘하고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았다. 자기 업무에 있어서는 천부적이었지만 주위 동료들과의 대인관계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만이 가지는 무언가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그의 수려한 외모나 번득이는 아이디어, 뛰어난 추진력도 한 몫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매력은 훌륭한 언변과 쇼맨십이었다. 그는 항상 허무맹랑한 계획을 말하면서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를 가지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고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복잡한 여성편력이 말해주듯 그는 어쨌든 대중을 사로잡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1.2. 창의력과 상상력

 

“혁신”이라는 말은 근원적으로 기존의 것을 뒤집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즉 혁신에 있어서의 핵심은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능력인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창의력”과 “상상력”이며 스티브 잡스가 그에 좋은 본보기가 됨은 자명하다.

그의 이러한 능력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 보다는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애플시리즈나 매킨토시(최초의 GUI구현), 픽사(최초의 디지털 애니매이션), iPOD등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실현했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기술적인 문제들은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면 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영감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특출난 능력의 부산물이라 볼 수 있겠다.

 

3.1.3. 추진력

 

혁신가의 아이디어는 항상 비판에 직면한다. 기존의 이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혁신가의 이론은 항상 정설을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것으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과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조직 내에서의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조직 차원에서는 골치 아픈 일일 수 있으나 리더들은 주위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실현시킨다. 물론 그러한 행동이 조직 의사결정 체계를 무시하고 독불장군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혁신가의 그러한 결심이 없다면 혁신은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리더는 항상 가장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결단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확신이 있다면 주위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추진해 나갈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혁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혁신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새로운 이론을 적용하고 싶어한다. 혁신은 미래에 있기 때문에 혁신가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3.1.4. 도전의식

 

혁신은 항상 목표 지향적 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혁신을 할 수 없다. 혁신이란 새로운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미 매킨토시가 나오기 전 애플 I, II를 통해 스티브 잡스는 많은 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매킨토시를 개발했고 매킨토시로 인해 그는 세계적인 갑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잡스는 경영자요 관리자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아이맥, 아이튠즈, 아이폰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트렌드세터(Trendsetter)가 되었고 애플은 기술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는 그룹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었을까?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스티브는 워즈니악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애플을 만들어 전에 없던 커다란 돈을 벌게 되었을때,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것에 만족하고 끝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매킨토시로 많은 부를 거머쥐었을 때에도 그는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때 만약 그가 현실에 안주하였다면 오늘날 토이스토리,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등 애플의 초현대적 제품들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혁신은 이렇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사용된 것들을 “새로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예측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실행을 머뭇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때에 조직을 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혁신가(Innovator)이다.

 

3.2. 조직적 요소

 

혁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조직의 Top Leader인 혁신가일 것이다. 하지만 리더의 의도대로 조직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혁신이 발생할 수 있을까? 말그대로 “혁신적으로(Innovative)” 발생해야 할 혁신이 천천히 느긋하게 실행된다면 시장의 변화를 앞지를 수 있을까? 사회의 변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데 현실에 안주한 직원들이 변화를 거부한다면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혁신은 개인의 역량으로만은 달성 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조직구성원들의 집합으로서의 조직이 혁신을 수용할 조건이 갖추어져야지만 혁신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3.2.1. 조직유연성

 

비단 혁신의 문제뿐 아니라 조직행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에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분 일초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대 경영 환경 속에서 각종 변수에 민첩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의 유연성은 혁신을 이루게 하는 최선의 조건일 것이다.

내부적으로 유연한 조직의 경우 top leader의 의사가 빠르고 정확하게 침투한다. 모든 조직구성원들이 회사의 방침을 숙지하고 신속히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

사실 매킨토시이후의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가 축출된 데에는 조직적인 문제가 많이 있었다. 그가 처신을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지나치게 많은 적들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 이사회가 그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만약 잡스가 다른 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가며 설득을 하여 정책을 결정하였다면 이사회가 그렇게나 반대하였을까? 당시 기록을 보면 잡스의 독단적인 행동은 “기인”으로 취급될 정도로 조직내부에서의 반발도 심했다. 결국 그는 조직내의 정치활동에 실패하여 쫓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훗날 경영복귀후 한층 유연해진 자세로 태도를 바꿈으로서 오늘날까지 애플이 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GE의 잭 웰치도 그 신화적인 기업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분야가 바로 이런 인적자원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였다. 부하직원에 대한 직무관리 뿐만 아니라 회사의 비전을 공유(Vision share)하고 모두가 전사적 노력을 집중함으로서 혁신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3.2.2. 개방적 자세

조직유연성에 관한 또 하나의 관점은 바로 변화에 적응하는 자세와 속도에 관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 도래 이후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지난 100세기 동안의 변화가 100년 동안 일어나고, 100년 동안의 변화가 10년 만에 일어나고, 10년간의 변화가 단 1년 만에 변하는 등 현대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속도를 기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사례는 경영의 역사를 보면 너무나 많이 나와 있다.

애플의 경우에도 애플 I, II 시절까지는 모든 것은 단 몇 명이서 이루는 계열통합적 업무를 실시하였으나 이후 과감한 아웃소싱을 실시함으로서 수익성에 많은 변화를 준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오늘날 애플기술의 핵심인 아이팟의 경우 애플, 삼성, 미쯔시다 등등 수많은 세계적인 회사들이 기판, 메모리, HDD, 소프트웨어 등을 개별적으로 만드는 초국가적 프로세스를 실시함으로서 이러한 개방적 자세에 정점을 이루고 있다.

조직분위기에 따라 조직의 역량이 바뀌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애플과 더불어 이러한 창조경영의 대표적인 사례인 Google.com의 경우도 좋은 예가 된다. 항상 트렌드변화의 꼭지점에 있는 포털사이트로서의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평상복, 자유로운 근무시간, 최고의 직원 복지제도 등으로 상징되는 구글의 업무분위기는 국내에는 부러움의 대상과 더불어 창의력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분위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러한 격식 없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례 제품발표회 때 마다 특유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짙은 양복에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한국의 기업 분위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3.3. 관계적 요소

위에서 우리는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개인적 요소와 조직적 요소를 보았다. 하지만 이 둘이 유기적이 아닌 독립적으로 따로 움직인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리더의 비전에 따라 조직이 유연하게 대응하고 조직의 요구에 따라 리더가 수긍할 수 있는 모습이 이것을 완성시키는 마침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플의 사례를 통해 이 관계적 요소의 두 축인 리더십과 팔로어십을 알아보도록 하자.

 

3.3.1. Leadership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침착한 지략가도, 용맹한 전사형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천재적인 창의력으로 다른 사람의 고정관념과 판단을 뛰어넘었고,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기행과 성공에 놀랄 뿐이었다.

사실 그의 리더십은 전통적인 이론에서 말하는 리더십의 형태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자는 성과로 말하는 법. 경영복귀 후 회사를 회생시켜 그는 지금도 컬트적인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3.3.2. Follwership

애플의 사례를 볼 때 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스티브 잡스 그의 미숙한 대인관계 능력이 조금만 더 보완되었더라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당시 애플은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인 집단이었고, 스티브가 비록 천재적 이었더라 해도 그는 자신의 부하들의 역량을 극대화 시켜줄 수 있는 리더가 되었어야 했다. 그를 축출한 것은 어찌보면 하극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이 패여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부하들의 집단행동 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회사에 충성도가 높고 적극적인 부하들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스티브의 우매함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4. 혁신과 성과 (애플의 사례에서 본)

 

매킨토시가 발표된 이래 애플은 PC시장에서 단 한번도 점유율 20%를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하나의 컬트가 된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량적 결과만 놓고 보면 애플은 결코 위대한 회사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 혁신의 위대함과 새로움, 가치 일 것이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 기술을 넘어 현대인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애플이 바로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던 것이다. 애플의 혁신은 아래의 세가지 사례에서 두드러 진다.

 

 

4.1. 애플시리즈

 

사실 애플I의 경우 완연히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물론 모든 회로기판을 연결한 워즈니악의 기술이라던지 스티브의 영업기술등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애플 I 의 성공에 힘입어 발매된 애플 II 의 경우 지금까지 계속되어오는 애플의 핵심역량인 혁신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박람회에서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PC)가 등장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작은 컴퓨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잡스는 뒤에 대형 컴퓨터가 숨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했다. 애플은 PC시장을 장악했고, 스물다섯의 잡스는 가장 젊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가 이후 보여준 혁신의 행보는 다양하게 전개되었었는데 우선 애플 II는 컴퓨터를 켤 때마다 매번 먼저 운영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자동적으로 운영체제를 가동함으로서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어했다. 이 점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 넣을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광들에게 애플제품이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 이유였다. 애플 II는 나중에 IBM PC가 등장할 때까지 시애틀 컴퓨터 사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기는 컴퓨터 플랫폼이 되었다. 하지만 애플의 혁신은 계쏙 되었다. 다음으로 스티브는 소형컴퓨터는 소음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팬을 없애야 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이것은 당시로선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애플 I 을 현실화 시킨 것이 워즈니악 이었다면 애플 II 를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 스티브는 로드 홀트를 영입하였다. 어쨌든 스티브의 요구에 따라 팬이 없는 컴퓨터가 등장하였고 그것은 또한 전원이 전자 제품에 전달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개선했다.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스티브는 영업방식 이라던지 정책, 홍보에 있어서도 매우 진보적인 시도를 많이 하였다. 결국 끝은 좋지 않게 끝났지만 그래도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애플 컴퓨터를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하는 이유이다.

 

 

4.2. 픽사

 

스티브 잡스는 본인이 세운 회사의 이사회에 의해 축출되고 세운 “NexT"라는 회사도 결국 흐지부지 되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티브는 조지 루커스로부터 사들인 픽사(Pixar)가 1995년 최초의 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Toy Story)>를 만들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꼭 봐야 할 영화. 꼭 얘기해야 할 영화. 꼭 다시 찾을 영화”라는 찬사를 내놓았다. 토이 스토리는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고, 잡스는 다시 억만장자가 됐다. 픽사의 주식 공개는 “잠재 가치를 보는” 새로운 투자 패턴을 낳았다.(아직 벤처 투자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1999년 <토이 스토리 2>는 속편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할리우드 불문율을 깨고 또 한번 큰 성공을 거뒀다.

2001년 <몬스터 주식회사>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세 번째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제 픽사는 “가장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사”가 되었다. 2003년 <니모를 찾아서>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 수입을 올리는 기록을 냈고,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2004년 픽사의 6번째 애니메이션인 <인크레더블(Incredible)>은 ‘애니 어워드’에서 작품상을 포함하여 10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아카데미 상도 탔다.

 

 

4.3. 아이포드

 

픽사에서의 성공은 스티브로 하여금 기술의 세계에서 감성의 세계로 사고의 틀을 옮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가 아이튠스 프로젝트를 완성해서 디지털 음악 분야에 작은 입지를 마련하자 스티브 잡스는 비로소 음악시장 전반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을 담고 다닐 mp3 플레이어 시장에 주목을 했다. 그는 기술 발달로 제품의 기능과 품질이 모두 비솟해지면서 디자인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간파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모든 혁신의 중심을 디자인에 두었다.

이후 세련된 심플함이 돋보이는 아이포드,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만든 아이맥, 작은 반구형의 새 아이맥, 최근에 나온 아이폰까지 모두 애플의 디자인 혁신의 결과물이다. 애플은 이제 고질적인 기술 집착에서 벗어나 아이코닉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발매한 지 5년 만에 5,0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가전제품 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5. 결론 : 혁신의 방법

 

지금까지 우리는 “혁신(Innovation)"을 필두로 창조경영의 표본으로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 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습을 찾아보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혁신은 변화의 조건이 아닌 생존의 수단이 되었으며 더 이상 혁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변화를 거부한다는 뜻으로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부르짖는 혁신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 중요성을 공감하지만 ‘혁신은 이렇게 해야 한다’, ‘혁신은 이런 것이다’라고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왜냐하면 혁신의 모습과 종류는 각 조직이 가지는 특성에 맞추어 개별적으로(individual) 적용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을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요즘의 조직은 비단 영리기업 뿐만이 아니다. 정부, 군대, 교회, NGO등 그동안 혁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공단체, 비영리단체에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심지어 가정과 개인에게도 혁신을 요구받는 요즘이다.

혁신은 변화를 뜻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며 이전 것에 대한 거부이다. 이미 성공한 기업의 오너가 된 잭 웰치가 현상에 만족하며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 결코 지금처럼 존경받는 경영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즉 혁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자세의 견지를 기본으로 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자기반성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구성원들이 이러한 혁신의 마인드를 가지고 조직에 충성할 때 조직은 물론 전체 노동시장과 경제시장에서의 혁신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