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PEOPL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PEOPL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LUDVIG VAN BEETHOVEN


 

 

 

 

노동사회학의 관점으로 본 베토벤

 

아래에도 나와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초월한 "혁신(Innovation)"을 지향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금에야 베토벤의 음악을 "CLASSIC"이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를 정리하고 낭만주의의 문을 연 매우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차있다.

 

그에게는 특히 -많이 꾸며진 이야기도 많지만- 달빛 창가에서 피아노를 치던 장님 소녀를 위해 작곡했다는 월광소나타(OP.27-Nr.2)의 이야기나 귀가 멀어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못듣다가 악장이 그의 팔을 잡고 알려줘서야 청중들의 호응을 알았다는 등 상당히 미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유년기 부터 천재로만 자라온 모짜르트와 비교되어 평생을 고독하게 자라온 그의 대비적 인생도 그런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노동사회학적 관점에서 그의 가장 큰 의의는 음악을 권력에서 '독립'시킴으로서 창작자의 권리를 주창한 최초의 작곡가라는데에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한 시도는 있었겠지만 음악사적인 위치에서 봤을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그였기에)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은 여가와 향락, 안식을 위한 도구였지 그것 자체가 치열한 노동, 사회적 생산, 3차산업을 논하는 도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general industry에 비하여 인프라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예술은 기득권들의 특권이 되었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 배경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바흐는 평생을 교회에서만 있었고(교회의 후원), 모짜르트는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에스테르하지 백작이 없었다면 하이든이란 작곡가는 빛을 바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를 두지못했다면 멘델스존의 음악이 이처럼 럭셔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스폰서들의 후원에 종속된 대다수의 음악가들에 비해(물론 베토벤도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발트슈타인 백작도 한 예가 될 듯) 그는 평생을 독립적인 활동을 했으며 자신의 악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 가난한 음악가였다. -마치 미술에서의 고흐처럼- 그의 음악은 생전에는 지금처럼 큰 빛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오늘날엔 그렇게 Trend에 쫓아가지 않은 그의 창조적 활동이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그러한 행동이 빛을 발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단순한 행동양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의 모습이 감동을 배가해주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교육열에 소년 베토벤을 혹사시킨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청년 베토벤이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그의 삶은 이전까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클래식을 대중이 더욱 공감하게 하였고, 청력을 상실한 후 작곡된 그의 말기 작품은 그를 '천재'로 국한한 모짜르트와 달리 '악성(樂聖)'이라 불리게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적 요인이 그를 유명하게 한 제 1원인은 결코 아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노라면 이러한 설명은 모두 유명무실 해지고 왜 그가 악성이라 불리는지 공감할 수 밖에 없다.

 

 

 

 

 

STEVE JOBS

 

 

대학원 1학년때 Steve Jobs와 Apple 에 대한 case study를 하면서 국내에 소개된 그와 관련된 모든 서적을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 그였다.

 

스티브잡스의 경우가 전해준 가장 현실적인 교훈중에 하나는 '사회는(역사는) 성공한 사람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제2, 3의 스티브잡스가 화려하게 비상하다가도 실패하고 역사에서 잊혀진다. 그 역시 자신이 세운 이사회에서 축출되었으나 만약 그가 픽사(Pixar)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화려한 컴백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렇게 유명한 경영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성공한 사람의 일대기는 늘 그렇듯 화려한 이면만 전해진다. 하지만 내가 판단할 때에(물론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굉장히 외골수적일 것이다. 고집도 세며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도 모르고 자기 부하들과 조직을 다루는 데에도 서투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한계를 넘지못하고 조직원에 의해 축출된다. 그렇게 끝나버린 인생은 실패담외의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하지만 결국 스티브잡스는 그러한 역경을 초월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혁신(Innovation)의 선도자"이다. 항상 시장을 앞서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에 천부적인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상품들은 항상 실험적이면서도 매니악한 특징을 보인다.

매킨토시가 기존의 컴퓨터 시장을 바꿨다. 픽사(Pixar)는 디지털 영화 시장을 개척했다. 아이팟(iPOD)과 아이튠즈(iTUNES)는 전세계의 음악시장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게 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맥북 에어(MacBook AIR)", 모바일 산업으로의 확장신호탄인 '아이폰(iPHONE)'등등 항상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그를 사람들은 iCON 혹은 iCEO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항상 혁신적인 성공을 할 수 있는데는 그의 선천적인 기질이 우선 한목했다. 초기 워즈니악과 함께 활동하던 시절 그의 영업능력은 이미 주목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두드러진 그의 약간은 허풍섞인 쇼맨십은 오늘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이 부분은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다) 또한 목표에 대한 끊임없는 집념과 자기확신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상황을 인식하는 휴리스틱한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의 가장 우수한 능력은 바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flexible) 자신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찰스다윈은 <진화론>에서 역사상 가장 오래동안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한 종도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고 바로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라 말하며 자연도태설을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이론은 오늘날 사회생물학으로 발전하여 기업과 조직구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이렇게 이론적 토대가 만들어 지기 이전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그러한 모델이 되어 가장 상황에 맞는 사업영역을 구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또하나 유명한 점은 애플 특유의 신제품발표회 프리젠테이션인데 이것은 애플사의 거의 독보적인 기업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항상 대중들을 위한 쇼맨십에 천부적인 기질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별도의 연구자료까지 있으니 참고하기를..

 

여튼 상황에 대한 뛰어난 학습능력, 천부적 기질, 쇼맨십 이렇게 세가지를 나는 그의 성공의 요인으로 본다. 비록 그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명망받는 기업인은 아닐지라도 세계 경영계의 아이콘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유시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의 <항소이유서>를 듣고 가슴을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지금 내 나이때 쓴 그 글 말이다.

 

그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선 크게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선은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돌이켜 볼때 혁명은 항상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6.25가 발발하였을때 학도병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었고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최근의 촛불시위까지. 변화는 항상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었었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 26살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나와있는 것과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적을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가 대단한 사람이고, 또한 시대가 변하였기에 과거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신세대들의 사회참여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인간 유시민'의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후 학생운동가로 민주투사로 사회운동가로 진보하다가 2선 국회의원의 임기가 마치고 그의 정신적 지도자인 노무현 前대통령의 퇴임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사실상 정치인으로서의 은퇴를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에 선봉에 서기 직전까지 가난과 부조리한 사회환경과의 투쟁의 모습또한 인상적이고 서울대와 독일유학을 마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수의 입장에서 진리추구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필력(筆力)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그가 유명세를 탄 1985년 일명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담당 판사에게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읽어본 판사는 이후 "이것이 20대중반의 청년의 글이맞느냐"며 주변사람들에과 돌려봤다고 들었섰는데. "이청년을 구속시키고싶지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부터 필력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몸으로 다시 전해진 감동은 의미가 컸다.

 

하지만 그 역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 많은 정적(政敵)들의 공세와 함께 그만의 순수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었고 나 역시 실망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실용주의/자유주의자인 그의 지적인 자유함은 이전부터 내가 동경하던 그 모습 그 자체였으며 지난 20여년간 내가 꿈꿔온 나의 이상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시 고찰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CARL SAGAN


 

 

칼 세이건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극과 극이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가장 인기있는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과학을 이기적으로 사용한 과학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책 "코스모스(Cosmos)"와 동명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현재 지금까지 출판된 과학서적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음)

 

하지만 그의 일생에서 천문학이 차지한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않다. 아니 달리말하면 그는 천문학외에도 너무나 많은 부분에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의 경력의 대부분도 다른 과학적 임무에 의해서였다.

 

불가피하게 냉전시대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서 그는 아폴로 프로젝트 뿐 아니라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계획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경력의 오점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이슈타인 이후 20세기 최고로 유명한 과학자라는 점은 자명하다. 우선 학문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내가 그에게 매력을 느낀 부분은 그의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지식의 향연이었다.

이전에도 움베르토 에코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엄청난 지식의 과시를 하는 학자들은 많이 있었으나 칼 세이건의 경우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해주었다. 그의 관심영역은 행성천문학, 전파천문학, 분석천문학등 천문학의 영역 이외에도 사회학, 인류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논리학, 역사학(고고학), 생물학, 미생물학, 수학, 정치학, 철학, 경제학, 물리학, 화학, 문학 게다가 음악까지..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정도이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종(理種)학문간에 놀라운 Convergence를 통해 신비한 교집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보면 때론 소설로 때론 논문으로 때론 논픽션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렇게 방대한 지식과 전문내용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설득력과 문학적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된 내용이 그의 과거 전력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평생을 "평화"를 목표로 운동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NASA에서 받은 공로상은 핵을 통한 평화안정에 기여한 공로때문이었으며 죽을때까지 평생을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 과학자이자 오피니언 이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과학자로서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MICHAEL PORTER

 

 

마이클 포터는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현재 HBS(Harvard Business School)의 교수로 재직중인 세계적 석학이다.

 

5 Forces model이나 Value Chain등 현재는 너무나 베이직이 되어버린 이론들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내에 그의 저작이나 그와 관련된 정보는 매우 적은 편이다.

그에게 한동안 매료되었던 나는 국내에 있는 그의 거의 모든 정보를 찾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미시경제학과 경영전략(Business Strategy : 경영학에서 가장 거시적인 영역을 다룸)을 넘나든다. 사실 경영학자들의 경우 경제학자들에 비해 다루는 분야가 매우 협소하다. 역설적으로 자칫 엔지니어가 되기 쉬운 경영학도들에게 좀 더 거시적 안목으로 기업환경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Tool을 제시하는 기법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HBS에서 그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가지고 있으며 단 한과목만 개설된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에세이도 제출하고 별도의 선발과정을 통해서야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그의 논문들은 국내에 "경쟁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그동안 Havard Business Review에 수록되었던 그의 논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엮어서 출판한 것들이다.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수많은 경영학의 분과중에 전략경영(Strategic Business)에 매료되었었고 필연적으로 마이클 포터를 동경할 수 밖에 없었다.

 

 

 

IAN BOSTRIDGE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테너이다.

영미가곡과 아리아, 오라토리오에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주 된 연구영역은 독일가곡, 그중에서도 18세기~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지난 세기 중반 리트는 Franz Wunderlich와 Dietrich Fischer-Dieskau로 양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명은 테너로 한명은 바리톤으로 그 영역이 달랐으나 절제된 미성과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피아노와의 이중주, 딕션 하나에 음표하나를 완벽히 대입하는 탁월한 해석능력은 판에 박은듯 똑같았고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은퇴이후 등장한 수많은 리트가수들의 연주는 그 둘의 아류에 불과하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해석의 변화는 요청받고는 있었으나 섣불리 시도되지는 않았다.

 

 잉글랜드 출신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는 뒤늦게 성악을 시작하였다. 그는 철학과 역사학 전공으로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인데 그때문에 데뷔시 "박사테너"라는 호칭으로 마케팅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지적호기심이나 학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그의 19세기 리트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우선 딕션의 해석에 있어서 그의 인문학적 상상력은 그의 학문적 배경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칸초네와 달리 리트에는 가사의 내용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분더리히나 피셔-디스카우의 해석을 마치 Standard인양 모조한 후배들과 달리 그는 훨씬 더 과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발성법에 있어서도 그는 dynamic range를 훨씬 넓히고 음색의 다양화에도 노력했다. 그는 본래 매우 리릭한 미성의 소유자였으나 초기작품중 schubert의 "Erkoenig"를 들어보면 얼마나 다양한 음색을 가졌나를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오페라 가수에 못지 않은데 이러한 문학적 해석, 탁월한 연기력, 타고난 미성과 표현력이 어우러져 그를 금세기 최고의 리릭테너로 인정하는데 나는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답보상태에 있던 독일가곡 해석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였던 정신을 가장 높이 평가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인 Fischer-Dieskau가 그의 -슈베르트 연가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Die Schoene Mullerin" 앨범에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것은 그러한 이유의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