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줍은 피아노와 담배연기를 뻐꿈뻐꿈 내뿜는 골드 플룻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다. 여행 가방에선 옷자락이 흐르고 옷장, 스탠드가 있는 단촐한 방은 초록빛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밤을 보낸 듯한 이들의 모습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엔 너무나 귀엽고 코믹하다. 자켓만으로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앨범의 일러스트는 또 이런 의미를 전달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재즈'를 상징하는 피아노와 '클래식'으로 오버랩 되는 플루트가 만나서 '크로스오버'란 놀라운 아기를 탄생시켰다는 메시지를... 클래식과 재즈가 잉태한 크로스오버 빌보드 크로스오버 차트에 11년 동안 랭크 되었던 전설적인 앨범 클로드 볼링의 "플룻과 재즈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Suite for Flute & Jazz Piano". 이 앨범은 자켓에서 보여준 것만큼이나 클래식과 재즈가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하게 또 얼만큼 경쾌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클로드 볼링은 정작 '크로스오버의 창시자는 자신이 아니라 듀크 엘링턴'이라고 말하지만 어찌되었든 그의 앨범은 크로스오버 음악의 바이블 내지는 전설이 되었다. 프랑스 칸느에서 태어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편곡자인 클로드 볼링은 올해로 75세가 됐다. 14살 때 이미 재즈 신동으로 알려진 그는 레코드 감상을 통해 대부분의 음악공부를 했고, 18살에는 자신의 딕시랜드 그룹과 첫 앨범작업을 했다. 이후 프랑스의 수많은 TV와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재즈의 왕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음악작업을 한 영화 중엔 "볼사리노", "어웨이크닝","은곰들", "루이지아나" 등이 있다. 빌보드 차트 정상 11년 차지 그가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65년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재즈로 편곡하면서부터다. 마침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자인 장 베르나르 드 포미에가 볼링에게 두 대의 피아노를 각각 재즈와 클래식으로 연주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볼링은 제안을 받아들여 1972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선보였고 이는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가져왔던 것.. 이후 볼링은 본격적인 재즈와 클래식의 결합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 파트너가 화려한 음색과 기교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던 프랑스의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Jean Pierre Rampal) 이다. 이 둘의 만남으로 탄생한 앨범 "플룻과 재즈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Suite for Flute & Jazz Piano"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무려 11년, 530주 동안 빌보드 크로스오버 차트에서 정상을 달리는 기염을 토한 그야 말로 신화 같은 앨범이 되었다. 바로 이 앨범이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 종합평가 : ★★★★★ (2005. 12. 2) |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Claude Bolling Jazz Ensemble
Renoir - Study: Torso, Sunlight Effect
인상파들이 발견한것은, 자연은 태양 빛의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종래의 회화관에 따르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각각 고유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녹색의 풀은 언제나 녹색이고 파란옷은 어디까지나 파란 옷이다. 다만 그 파랑이나 녹색이 때레 따라 명암의 변화를 보일 뿐이다. 명암의 변화는 구체적으로는 흰색에서 검정에 이르는 갖가지 회색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밝은 파랑, 어두운 파랑이라는 밝기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사물은 언제나 같은 색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인상파들은 태앙 빛 아래에서는 자연의 사물들이 고유의 색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흰옷은 어디까지나 희다고 믿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쉽게 이해되는 일이 아니었다. 역으로 말하면, 만약 흰옷에 파랑이나 분홍색 터치가 있으면 그것은 빛의 반사가 아니라 파랑이나 분홍 무늬가 있는 옷으로 받아들여질 위험마저 있었다. 사실 르누아르의 이 작품을 발표했을대. 여인의 피부 위에 떨어지는 빛의 반점을 이해하지 못한 어떤 비평가는 "시반이 생겨난 시체와 같은 몸뚱이"라며 비난했을 정도이다. 이것은 외계를 보는 인간의 눈이 얼마나 습관이나 약속에 의해 규제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명화를 보는 눈 - 다카시나 슈지 중에서. |
Godiva by John Collier, 1898
| 11세기 당시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영주(領主) 리어프릭(Leofric)의, 열일곱 살 난 어린 부인 그녀는 주민들이 과중한 세금 때문에 허덕이는 것을 남편에게 집요하게 간청을 한다. 남편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간의 나신을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으로 생각했다는데,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바퀴 돌면 세금을 감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이튿날 열일곱 살의 고다이버는 긴 머리로 가슴과 국부를 가린 채 나체로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섰다. 세금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위해서… 이 소식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에 커튼을 드리우고 아무도 보지 않기로, 그리고 이 일을 비밀에 부치기로 약속했다. 그 전설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Godiva를 그린 작품.. |
<LIFE is...> - Hirai Ken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감성의 소유자 일본 R&B싱어송라이터의 선두주자. 그의 음악은 J-POP의 주류중 하나인 펑크와 테크노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어쿠스틱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 알앤비가 유행을 타기시작한 2000년전 알앤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며 현재 그 드넓은 일본음악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순수하다. 거의 모든곡을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 까지 담당하는 그의 앨범의 완성도를 가늠할수 있는 또하나의 요소는 레코딩의 완성도인데 그는 보컬의 이펙터를 최대한 줄이고 리버브(잔향효과)를 거의 없앰으로서 -실로 그의 숨소리 까지도 느낄수 있을만큼- 그 어떤 음악보다도 깊은 호소력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반주도 건반이 주를 이루고 스트링이 화성을 꾸며주는 방식을 이룬다. 어찌보면 극히 단순한 형식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그것으로 인해 더욱 주제에 주목할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활동기간이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많은 디스코그라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수많은 앨범중 명반으로 꼽히는 <Life is...>의 대표곡 "Life is..."는 바로 이것이 "Hirai Ken"의 음악이라고 감탄할수 있는, 일본 알앤비의 수준을 끌어올린 역작으로 볼수 있다. <앨범수록곡> ※추천곡 : ★ 1. Strawberry Sex ★ 2. Revolver 3. Ex-Girlfriend ★ 4. Ring 5. Come Back 6. Sombody`S Girl 7. I'm So Drunk 8. Missin` You ~ It Will Break My Heart~ 9. 世界で一番君が好き? 10. メモリ-ズ 11. Life Is… ★★ 12. 大きな古時計 * 기타 주목할만한 Hirai Ken의 앨범들 <思いがかさなるその前に... (Single)>, <LIFE is...~another story~ (Single)>,<瞳をとじて (Single)> ※ 종합평가 : ★★★★ |
<Piazzolla Forever> - Astor Piazzolla
| 숨 쉴수 없는 탱고의 시작과 발전, 완성. Astor Piazzolla의 음악은 그야말로 탱고의 시작이자 탱고의 완성이다. 사실 Tango의 역사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쳐도 그가 발전시킨 누에보 탱고가 마치 탱고의 모든것처럼 전달받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음악이 음악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음악은 지나치게 슬프다. 숨이 막힐것만 같다. 왠만큼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그의 음악을 이해하라는 것은 지나친 강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아르헨티나의 숨결과 역사가 배여있다. 재즈가 흑인의 숨결과 역사를 대변하고 국민주의 악파의 음악들이 그 민족의 숨결과 역사를 대변하는 것 처럼 아르헨티나 전통 음악에 재즈적인 요소를 가미한 탱고음악은 그 선율적인 특징과 구조적인 매력외에도 아르헨티나음악의 이국적인 색채와 남미의 슬픈 역사를 대변하는 것같다. 비오는날 듣는 피아졸라의 반도네온은 마치 여인의 울음소리 같고 리베라탱고를 켜는 요요마의 탱고소리는 한명의 춤추는 무희를 보는것 같다. 이것이 탱고이다. 열정과 향락, 슬픔과 고통, 인생에 대한 감사를 가지고 있는것이 바로 피아졸라의 음악인 것이다. <앨범수록곡> (★-추천곡) 01 Libertango ★ 02 Primavera Portena 03 Verano Porteno ★ 04 Otono Porteno 05 Invierno Porteno 06 Fuga Y Mysterio 07 Chiquilin De Bachin 08 Oblivion 09 Adios Nonino 10 Umichelangelo '70 11 Milonga Del Angel ★ 12 Tango Del Angel ★ 13 La Muerte Del Angel 14 Historie Du Tangeo_Cafe 1930 ★ 15 Historie Du Tango_Night Club 1930 ★ 16 Concerto For Bandoneon And Orchestra <감상시 유의사항> 1. 곡 이해가 많이 난해하니 그의 음악에 대한 문헌을 찾은후 감상하면 그 감동이 더욱 커질것.. ※ 종합평가 : ★★★★ |
Schubert Lieder - Ian Bostridge
현대 슈베르트 리트의 새로운 해석과 기준제시. 이안 보스트리지의 명반 <Schubert Lieder> 1970년대 이후 리트의 영역은 리리코 가수들에 의해 무서운 발전과 근대적인 해석의 눈부신 변화를 이루었다. 그것을 주도한 대표적 가수는 Fritz Wunderlich 라던가 Dietrich Fischer-Dieskau를 예를 들수 있겠는데 그들의 영향은 실로 오늘날까지 지대하여 수많은 학생들에게 몇십년간 리트의 모범답안으로 불려지었던것이 사실이다. 그 영향은 학생들로 하여금 해석의 획일화를 불러올만큼 그 둘(스타일도 너무 비슷한)의 리트점령은 엄청난것이였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문화가 바뀌며 청중들의 기호도 바뀌고 있다. 그 흐름을 타고 제시한 영국출신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의 새로운 리트해석은 성악계에 적지않은 파장을 주고있다. 그의 음색은 유리알을 연상시키듯 한없이 투명하지만 <Erlkönig>의 연기에서 보여주듯 폭넓은 음역과 표현의 영역은 전시대 성악가들의 한계를 넘나드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딕션과 음표, 아티큘레이션의 조화가 이전시대 리트의 성과라면 그는 풍부한 주관적 해석을 가미시켜 듣는이로 하여금 마치 신선한 요리를 맛보는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기존 슈베르트 초기-중기 낭만가곡은 고전적인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 작품이 다수이나 그의 해석은 오히려 후기낭만의 인상을 남기기도 하며 일부 통절가곡에 있어서는 아리아적인 요소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그의 풍부한 주관은 비평가들에게 지적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앨범이 애호가들에게 가치를 남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앨범소개> 앨범명 : schubert: lieder 연주자 : ian bostridge, tenor 반주자 : julius drake, piano 레이블 : emi CDC 5 56347 2 [DDD . 69:28] <앨범수록곡> (★-추천곡) die forelle, D550 ★ ganymed, D544 im frühling, D882 an den mond, D196 heidenröslein, D257 wandrers nachtlied II, D768 erster verlust, D226 der fischer, D225 fischerweise, D881 nacht und träume, D827 der zwerg, D771 ★ an die musik, D547 du bist die ruh, D776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 an silvia, D891 litanei auf das fest allerseelen, D343 frühlingsglaube, D686 im haine, D764 der musensohn, D764 wandrers nachtlied I, D224 seligkeit, D433 erlkönig, D328 ★★ ※ 종합평가 : ★★★★☆ |
LUDVIG VAN BEETHOVEN
노동사회학의 관점으로 본 베토벤
아래에도 나와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초월한 "혁신(Innovation)"을 지향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금에야 베토벤의 음악을 "CLASSIC"이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를 정리하고 낭만주의의 문을 연 매우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차있다.
그에게는 특히 -많이 꾸며진 이야기도 많지만- 달빛 창가에서 피아노를 치던 장님 소녀를 위해 작곡했다는 월광소나타(OP.27-Nr.2)의 이야기나 귀가 멀어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못듣다가 악장이 그의 팔을 잡고 알려줘서야 청중들의 호응을 알았다는 등 상당히 미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유년기 부터 천재로만 자라온 모짜르트와 비교되어 평생을 고독하게 자라온 그의 대비적 인생도 그런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노동사회학적 관점에서 그의 가장 큰 의의는 음악을 권력에서 '독립'시킴으로서 창작자의 권리를 주창한 최초의 작곡가라는데에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한 시도는 있었겠지만 음악사적인 위치에서 봤을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그였기에)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은 여가와 향락, 안식을 위한 도구였지 그것 자체가 치열한 노동, 사회적 생산, 3차산업을 논하는 도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general industry에 비하여 인프라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예술은 기득권들의 특권이 되었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 배경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바흐는 평생을 교회에서만 있었고(교회의 후원), 모짜르트는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에스테르하지 백작이 없었다면 하이든이란 작곡가는 빛을 바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를 두지못했다면 멘델스존의 음악이 이처럼 럭셔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스폰서들의 후원에 종속된 대다수의 음악가들에 비해(물론 베토벤도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발트슈타인 백작도 한 예가 될 듯) 그는 평생을 독립적인 활동을 했으며 자신의 악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 가난한 음악가였다. -마치 미술에서의 고흐처럼- 그의 음악은 생전에는 지금처럼 큰 빛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오늘날엔 그렇게 Trend에 쫓아가지 않은 그의 창조적 활동이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그러한 행동이 빛을 발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단순한 행동양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의 모습이 감동을 배가해주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교육열에 소년 베토벤을 혹사시킨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청년 베토벤이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그의 삶은 이전까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클래식을 대중이 더욱 공감하게 하였고, 청력을 상실한 후 작곡된 그의 말기 작품은 그를 '천재'로 국한한 모짜르트와 달리 '악성(樂聖)'이라 불리게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적 요인이 그를 유명하게 한 제 1원인은 결코 아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노라면 이러한 설명은 모두 유명무실 해지고 왜 그가 악성이라 불리는지 공감할 수 밖에 없다.
STEVE JOBS
대학원 1학년때 Steve Jobs와 Apple 에 대한 case study를 하면서 국내에 소개된 그와 관련된 모든 서적을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 그였다.
스티브잡스의 경우가 전해준 가장 현실적인 교훈중에 하나는 '사회는(역사는) 성공한 사람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제2, 3의 스티브잡스가 화려하게 비상하다가도 실패하고 역사에서 잊혀진다. 그 역시 자신이 세운 이사회에서 축출되었으나 만약 그가 픽사(Pixar)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화려한 컴백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렇게 유명한 경영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성공한 사람의 일대기는 늘 그렇듯 화려한 이면만 전해진다. 하지만 내가 판단할 때에(물론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굉장히 외골수적일 것이다. 고집도 세며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도 모르고 자기 부하들과 조직을 다루는 데에도 서투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한계를 넘지못하고 조직원에 의해 축출된다. 그렇게 끝나버린 인생은 실패담외의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하지만 결국 스티브잡스는 그러한 역경을 초월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혁신(Innovation)의 선도자"이다. 항상 시장을 앞서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에 천부적인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상품들은 항상 실험적이면서도 매니악한 특징을 보인다.
매킨토시가 기존의 컴퓨터 시장을 바꿨다. 픽사(Pixar)는 디지털 영화 시장을 개척했다. 아이팟(iPOD)과 아이튠즈(iTUNES)는 전세계의 음악시장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게 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맥북 에어(MacBook AIR)", 모바일 산업으로의 확장신호탄인 '아이폰(iPHONE)'등등 항상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그를 사람들은 iCON 혹은 iCEO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항상 혁신적인 성공을 할 수 있는데는 그의 선천적인 기질이 우선 한목했다. 초기 워즈니악과 함께 활동하던 시절 그의 영업능력은 이미 주목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두드러진 그의 약간은 허풍섞인 쇼맨십은 오늘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이 부분은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다) 또한 목표에 대한 끊임없는 집념과 자기확신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상황을 인식하는 휴리스틱한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의 가장 우수한 능력은 바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flexible) 자신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찰스다윈은 <진화론>에서 역사상 가장 오래동안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한 종도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고 바로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라 말하며 자연도태설을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이론은 오늘날 사회생물학으로 발전하여 기업과 조직구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이렇게 이론적 토대가 만들어 지기 이전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그러한 모델이 되어 가장 상황에 맞는 사업영역을 구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또하나 유명한 점은 애플 특유의 신제품발표회 프리젠테이션인데 이것은 애플사의 거의 독보적인 기업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항상 대중들을 위한 쇼맨십에 천부적인 기질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별도의 연구자료까지 있으니 참고하기를..
여튼 상황에 대한 뛰어난 학습능력, 천부적 기질, 쇼맨십 이렇게 세가지를 나는 그의 성공의 요인으로 본다. 비록 그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명망받는 기업인은 아닐지라도 세계 경영계의 아이콘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유시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의 <항소이유서>를 듣고 가슴을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지금 내 나이때 쓴 그 글 말이다.
그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선 크게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선은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돌이켜 볼때 혁명은 항상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6.25가 발발하였을때 학도병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었고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최근의 촛불시위까지. 변화는 항상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었었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 26살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나와있는 것과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적을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가 대단한 사람이고, 또한 시대가 변하였기에 과거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신세대들의 사회참여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인간 유시민'의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후 학생운동가로 민주투사로 사회운동가로 진보하다가 2선 국회의원의 임기가 마치고 그의 정신적 지도자인 노무현 前대통령의 퇴임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사실상 정치인으로서의 은퇴를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에 선봉에 서기 직전까지 가난과 부조리한 사회환경과의 투쟁의 모습또한 인상적이고 서울대와 독일유학을 마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수의 입장에서 진리추구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필력(筆力)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그가 유명세를 탄 1985년 일명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담당 판사에게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읽어본 판사는 이후 "이것이 20대중반의 청년의 글이맞느냐"며 주변사람들에과 돌려봤다고 들었섰는데. "이청년을 구속시키고싶지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부터 필력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몸으로 다시 전해진 감동은 의미가 컸다.
하지만 그 역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 많은 정적(政敵)들의 공세와 함께 그만의 순수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었고 나 역시 실망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실용주의/자유주의자인 그의 지적인 자유함은 이전부터 내가 동경하던 그 모습 그 자체였으며 지난 20여년간 내가 꿈꿔온 나의 이상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시 고찰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CARL SAGAN
칼 세이건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극과 극이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가장 인기있는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과학을 이기적으로 사용한 과학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책 "코스모스(Cosmos)"와 동명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현재 지금까지 출판된 과학서적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음)
하지만 그의 일생에서 천문학이 차지한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않다. 아니 달리말하면 그는 천문학외에도 너무나 많은 부분에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의 경력의 대부분도 다른 과학적 임무에 의해서였다.
불가피하게 냉전시대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서 그는 아폴로 프로젝트 뿐 아니라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계획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경력의 오점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이슈타인 이후 20세기 최고로 유명한 과학자라는 점은 자명하다. 우선 학문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내가 그에게 매력을 느낀 부분은 그의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지식의 향연이었다.
이전에도 움베르토 에코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엄청난 지식의 과시를 하는 학자들은 많이 있었으나 칼 세이건의 경우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해주었다. 그의 관심영역은 행성천문학, 전파천문학, 분석천문학등 천문학의 영역 이외에도 사회학, 인류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논리학, 역사학(고고학), 생물학, 미생물학, 수학, 정치학, 철학, 경제학, 물리학, 화학, 문학 게다가 음악까지..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정도이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종(理種)학문간에 놀라운 Convergence를 통해 신비한 교집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보면 때론 소설로 때론 논문으로 때론 논픽션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렇게 방대한 지식과 전문내용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설득력과 문학적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된 내용이 그의 과거 전력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평생을 "평화"를 목표로 운동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NASA에서 받은 공로상은 핵을 통한 평화안정에 기여한 공로때문이었으며 죽을때까지 평생을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 과학자이자 오피니언 이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과학자로서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MICHAEL PORTER
마이클 포터는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현재 HBS(Harvard Business School)의 교수로 재직중인 세계적 석학이다.
5 Forces model이나 Value Chain등 현재는 너무나 베이직이 되어버린 이론들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내에 그의 저작이나 그와 관련된 정보는 매우 적은 편이다.
그에게 한동안 매료되었던 나는 국내에 있는 그의 거의 모든 정보를 찾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미시경제학과 경영전략(Business Strategy : 경영학에서 가장 거시적인 영역을 다룸)을 넘나든다. 사실 경영학자들의 경우 경제학자들에 비해 다루는 분야가 매우 협소하다. 역설적으로 자칫 엔지니어가 되기 쉬운 경영학도들에게 좀 더 거시적 안목으로 기업환경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Tool을 제시하는 기법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HBS에서 그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가지고 있으며 단 한과목만 개설된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에세이도 제출하고 별도의 선발과정을 통해서야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그의 논문들은 국내에 "경쟁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그동안 Havard Business Review에 수록되었던 그의 논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엮어서 출판한 것들이다.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수많은 경영학의 분과중에 전략경영(Strategic Business)에 매료되었었고 필연적으로 마이클 포터를 동경할 수 밖에 없었다.
IAN BOSTRIDGE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테너이다.
영미가곡과 아리아, 오라토리오에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주 된 연구영역은 독일가곡, 그중에서도 18세기~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지난 세기 중반 리트는 Franz Wunderlich와 Dietrich Fischer-Dieskau로 양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명은 테너로 한명은 바리톤으로 그 영역이 달랐으나 절제된 미성과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피아노와의 이중주, 딕션 하나에 음표하나를 완벽히 대입하는 탁월한 해석능력은 판에 박은듯 똑같았고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은퇴이후 등장한 수많은 리트가수들의 연주는 그 둘의 아류에 불과하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해석의 변화는 요청받고는 있었으나 섣불리 시도되지는 않았다.
잉글랜드 출신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는 뒤늦게 성악을 시작하였다. 그는 철학과 역사학 전공으로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인데 그때문에 데뷔시 "박사테너"라는 호칭으로 마케팅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지적호기심이나 학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그의 19세기 리트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우선 딕션의 해석에 있어서 그의 인문학적 상상력은 그의 학문적 배경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칸초네와 달리 리트에는 가사의 내용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분더리히나 피셔-디스카우의 해석을 마치 Standard인양 모조한 후배들과 달리 그는 훨씬 더 과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발성법에 있어서도 그는 dynamic range를 훨씬 넓히고 음색의 다양화에도 노력했다. 그는 본래 매우 리릭한 미성의 소유자였으나 초기작품중 schubert의 "Erkoenig"를 들어보면 얼마나 다양한 음색을 가졌나를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오페라 가수에 못지 않은데 이러한 문학적 해석, 탁월한 연기력, 타고난 미성과 표현력이 어우러져 그를 금세기 최고의 리릭테너로 인정하는데 나는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답보상태에 있던 독일가곡 해석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였던 정신을 가장 높이 평가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인 Fischer-Dieskau가 그의 -슈베르트 연가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Die Schoene Mullerin" 앨범에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것은 그러한 이유의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