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의 <항소이유서>를 듣고 가슴을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지금 내 나이때 쓴 그 글 말이다.
그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선 크게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선은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돌이켜 볼때 혁명은 항상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6.25가 발발하였을때 학도병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었고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최근의 촛불시위까지. 변화는 항상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었었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 26살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나와있는 것과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적을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가 대단한 사람이고, 또한 시대가 변하였기에 과거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신세대들의 사회참여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인간 유시민'의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후 학생운동가로 민주투사로 사회운동가로 진보하다가 2선 국회의원의 임기가 마치고 그의 정신적 지도자인 노무현 前대통령의 퇴임이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사실상 정치인으로서의 은퇴를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에 선봉에 서기 직전까지 가난과 부조리한 사회환경과의 투쟁의 모습또한 인상적이고 서울대와 독일유학을 마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수의 입장에서 진리추구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필력(筆力)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그가 유명세를 탄 1985년 일명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담당 판사에게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읽어본 판사는 이후 "이것이 20대중반의 청년의 글이맞느냐"며 주변사람들에과 돌려봤다고 들었섰는데. "이청년을 구속시키고싶지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부터 필력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몸으로 다시 전해진 감동은 의미가 컸다.
하지만 그 역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 많은 정적(政敵)들의 공세와 함께 그만의 순수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었고 나 역시 실망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실용주의/자유주의자인 그의 지적인 자유함은 이전부터 내가 동경하던 그 모습 그 자체였으며 지난 20여년간 내가 꿈꿔온 나의 이상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시 고찰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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