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21세기 한미동맹의 패러다임 전환

21세기 한미동맹의 패러다임 전환

 

 

 

 

 

1. 서 론

 

우리나라의 역사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외세의 침략과 힘의 논리에 지배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력과 10위권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OECD 가입국가이다. 우리나라가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면 지역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구 소련) 등 강대국의 사이에 위치하며 이러한 지역 헤게모니의 끝자락에서 반대세력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첨병역할도 하며 오랜 시간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운이 바뀌는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만의 자생적인 국력만을 가지고 국가를 지킨다는 것은 많은 희생을 비용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며 이들 주변국들을 이용한 안보외교는 유라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성 높은 방안이라는 것을 직시하여야 한다.

 

한민족이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것은 독립운동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나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의 결과가 결정적인 원인이었으며 미·소의 타협에 의하여 조국은 분단되었다. 소련과 중공군의 지원으로 감행된 북침은 3년 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고 정전협정 역시 미국, 소련, 중국의 주도하에 성사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강대국의 헤게모니에 따라 바뀌던 국가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선 우방국을 통한 외교관계 형성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다. 정전협정 이후 맺어진 한·미 동맹은 이러한 국가생존의 패러다임으로 분단시대, 개발시대, 냉전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60여년 전 체결된 한미동맹은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외부환경이 변하고 국제정세가 변하고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렇게 점점 변화가 가속화되고 각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는 오늘날 전통적이고 절대적인 우방국인 한·미 동맹의 현재를 정리해보고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새로운 한·미 외교의 패러다임인 ‘전략동맹’의 의의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였다.

 

 

2. 한미동맹의 의미와 역사

 

미국이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북아에서 미·소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부터였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후부터 시작된 동서냉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 대한 자국의 세력권을 방어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에 미치는 소련의 영향력 등에 특별한 관심

을 기울이면서 한국을 소련의 동북아에서의 팽창주의 억지를 위한 전진기지 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한국정부가 수립되고 난 뒤 미 군정은 1948년 8월 24일에 체결된 ‘한·미 잠정 군사협정’에 근거하여 임시군사고문단(PMAG : Provision Military Advisory Group)을 설치하며 한반도에 대한 진출을 시작했다. 이후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 당시 미·소간의 이념적 대결구도는 미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한반도가 미국의 대소 봉쇄정책의 제 1 전선이 되게 하였으며 이후 냉전시대를 관통하는 동안 한국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고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상에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 기존의 비공식적인 한·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국제환경은 이념과 패권의 양극시대라고 간략화 할 수 있다. 미·소 양 진영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이 시기는 적과 우방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였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한 1987년 6월에 이르러 냉전시대가 붕괴된 수십년 동안 세계 정세는 남방과 북방의 3각 협력의 체계를 이러한 기준에 따라 나뉘게 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 기본적인 세력 구도는 한·미·일 남방 3각 동맹협력체제와 북·소·중 북방 3각 협력체제간의 이념적·군사적 냉전·대립 구조였다.

 

이러한 수십년에 걸친 이념전쟁 속에서도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성은 매우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의 복구과정이 진행되던 1960년대의 기간은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한편 한국의 월남파병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인데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국의 대미경제 의존관계가 다소 약화 추세를 보이던 때에 이를 통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당시 한반도의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사 및 경제 원조 조치를 취했으며 한미 양국정상의 교환방문, 한미 행정협정 체결 및 과학기술원 설립 등의 여러 가지 현안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1968년 무장공비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 에블로호 납치사건, 미 정찰기 EC-121기 격추사건, 1969년의 ‘닉슨 독트린’발표, 1970년대의 미 7사단의 철수, 월남의 공산화(1975),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1978)등 미·소 냉전구도를 더욱 곤고히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미국이 한국과 동맹을 형성한 원인은 공산권의 확장을 막기 위한 대소 봉쇄정책을 추구함에 있어 구소련과 북한이 위협 세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구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 공산화되자, 동북아의 공산화 물결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미국의 전초기지라 할 수있는 일본의 방위에 있어 한반도의 공산화라는 시나리오는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즉 한반도의 공산화는 일본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미국에 대한 위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반도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볼 때, 남한이 인지하고 있는 위협의 모든 것이 미국에게도 동일하게 위협의 인지로 다가왔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의 경우, 미국 본토가 직접적으로 공격의 위협을 받은 것은 아니나, 미국의 대소 봉쇄 전략 및 자유주의 수호에 있어 위협이 되는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한국과 동맹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시대를 거쳐 가며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다름 아닌 ‘냉전’과 ‘이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이후 세계는 붕괴이전 수십 년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를 맞이하였다. 세계경제의 발달, 정보통신의 발달, 교육수준의 증가,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하여 세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한·미 관계도 ‘이념’이라는 숙주에서 나온 강제적 관계가 아닌 평화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춰서 강력한 전환(Paradime shift)을 해야만 할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3. 신정부의 대북정책 패러다임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를 토대로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한미관계의 창조적 발전’을 ‘글로벌 코리아’ 국정지표 실현을 위한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그중에서 기존의 ‘한미동맹’을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킨다는 기본목표로 제시하였다.

기존의 ‘한미동맹’이 가진 패러다임의 주축은 이념과 군사력이었다. 하지만 ‘전략동맹’은 이를 넘어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제반 분야에서 상호 신뢰 확대를 통해 자유·민주·시장경제가치를 공유하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 기반을 공고히 하는 한편, 여타 외교 도전과 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한·미 양국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략동맹’을 발표하자 각국은 다양한 의견을 발표하였는데 우선 당사자인 미국의 의회와 언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이 한미관계 강화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표시하였다. 특히 당선이후 미 의회는 ‘당선 축하결의안’을 통해 새로운 한미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 다른 주변국들은 한미관계의 강화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소련의 해체이후 새로운 미국과의 경쟁구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중국은 한·미 및 한·미·일의 공조 강화를 미국 정점의 동북아 지역 안보 구도의 고착화로 해석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였다. 또한 북한의 경우도 한미일 3국의 공조에 대해서 동일하게 비판하였다.

 

(1)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추진

 

참여정부이래 지난 5년동안 한미동맹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발전에 따른 민족적 자신감 고조, 반미감정의 표출,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관 변화등으로, 대회적으로는 9.11 테러이후 미국의 대외안보정책의 변화, 중국과 일본의 부상에 따른 지역 역학관계의 변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인하여 기존 냉전질서에 맞게 디자인 되었던 한미동맹을 둘러싼 전략 환경은 급변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기존의 한미동맹에 따른 정책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은 국방개혁 2020에서 볼 수 있듯이 동맹보다 자주를 중요시 하였으며, 미국은 글로벌 한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일방적 재편을 추진하였다. 당시 한미관계는 전통적 우방이었던 한미간의 동맹관계의 표류를 막고 새로운 전략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동맹의 제정 내지는 재확인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08년 4월 캠프데이비드에서 실시된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21세기 안보 환경 변화와 미래 수요에 보다 잘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 구조로 발전”시키기로 하여 “21세기 전략동맹”으로의 격상을 합의하였다.

 

(2)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특징

 

‘21세기 전략동맹’은 한반도 중심의 냉전형 동맹을 넘어 전략 환경 변화와 미래안보수요를 반영한 장기적 관점과 글로벌한 시야에 입각한 포괄적 협력관계를 의미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지향점으로 가치동맹, 신뢰동맹 그리고 평화구축동맹을 제시하였다.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은

 

1)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가치동맹)

2)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의 양국 간 신뢰를 공고히 하며 (신뢰동맹)

3) 공동의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운데 지역 및 세계적 차원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 (평화구축동맹) 하는 동맹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왜 21세기 전략동맹인가?

 

장기적 관점과 글로벌한 시야에 입각한 포괄적인 21세기 전략동맹전환의 필요성은 아래의 배경에서 설명할 수 있다.

 

1) 동맹변화 불가피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이전·배치되고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는 2012년 이후의 한미동맹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받은 이상, 주한 미군은 ‘방어 중심의 붙박이형’ 부대에서 벗어나 역외 분쟁이나 테러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력으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세계화와 국익의 확대

한국의 국익은 더 이상 한반도와 동북아라는 제한적인 지정학적 공간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복잡한 상호의존관계에서 정의되는 시대에 돌입하였다. 세계화는 한국의 안보영역을 확대하였고 이러한 세계화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스스로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변환(transormation)할 수 있는 가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다.

또한 냉전시대에는 ‘이념’과 ‘군사력’이라는 단순한 대칭전력의 양적비교에 그쳤던 외교문제들은 오늘날 세계금융질서, 환경, 자원, 에너지, 식량,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과 같은 새로운 어젠다의 등장으로 더욱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3) 미국의 안보정책 변화

냉전 시기 미국은 중무장한 미군을 동맹국의 최전선에 배치하였다. 주한미군과 주독미군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냉전종결 이후부터9.11을 거치며 미국은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등의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처를 중시하였고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며 같이 행동을 할 수 있는가가 미국의 동맹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결국 글로벌 질서 유지차원에서 초강대국인 미국과 같이 할 수 있는가가 점차 미래 한미동맹의 향방을 좌우할 과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전략환경의 변화

한미동맹을 둘러싼 가장 중대한 도전은 대국의 부상이다. 지난 50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이끈 냉전이념은 붕괴되었지만 새로운 권력을 앞세운 경쟁국의 등장은 새로운 역학구조를 만들고 있다.

 

가. 현재 우리 주변에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두나라가 동시에 강력했던 적은 지난 400년 가까이 없었던 일이며 두 나라 공히 민족주의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10년 가까이 연평균 10%의 성장을 하며 미국의 가장 잠재적인 위협이 될 중국과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따른 지역 역학관계의 변화는 향후 세계질서에 매우 큰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나. 한편 한국의 전략 환경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북한과 통일문제도 날로 새로운 양상을 띄고 있다. 북한의 경제적 몰락과 급변사태, 이에 따른 핵 정치력은 다른 외부환경의 급박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의 전통적인 동맹구조를 더욱 강조하는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4. 미래 한미동맹의 목표와 역할

 

이러한 미래 한·미 전략동맹의 조정과 관련된하여 양국은 지난 5년간 많은 노력을 했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용산기지이전,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의 감축 및 재배치, ‘연합토지관리계획(LPP: Land Partnership Plan)’,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포괄적 안보상황 평가(CSA: Comprehensive Security Assessment), 미래 한미동맹 비전연구(JVS: Joint Vision Study), 전시작전통제권(war-time OPCON) 전환 및 새로운 지휘체계 연구(CRS: Command Relation Study), 방위비 분담(SMA: Special Measures Agreement)등의 이슈에 합의하였으고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Future of the ROK-US Alliance Policy Initiative)’,‘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Security Policy Initiative)’,‘한미전략대화(SCAP: 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등을 새로이 설치하여 협의 제도와 기구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양국은 이견차이를 좁히고 있지 못하고 있다.

- 주한미군기지 재배치는 토지매입, 환경치유, 비용분담등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 상태이며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양측 입장을 모두 반영하여 봉합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여 문제 제기 당시 상황으로 회귀한 상태이다.

- 방위비분담에 대해서 미국은 ‘공평한 분담(equitable share)'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은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은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으로의 전환은 양국 간 계획의 성격 및 민감성 등에 관한 이견으로 무산되었고

- 당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후 연합사를 해체하고 ‘동맹군사협조본부(AMCC: Alliance Military Coordination Center)'를 설치·운용하기로 하였으나 이 역시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 또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미사일 방어체제(MD) 등 여타 미국의 관심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및 여타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위협과 이견속에서 한·미 전략동맹은 과연 앞으로 어떠한 과업을 해야 하며 어떠한 의제를 주로 고민해야 할 것인가?

 

(1) 동맹의 글로벌화

미래의 전략동맹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국지적 문제를 넘어 세계화의 변화와 더불어 ‘글로벌한 관범에서 보고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는 국경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통합되는 현상이 진행되면서 범지구적 무한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의 영역도 글로벌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국제적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협력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 대중국(對中國) 관계 고려

새로운 한미 전략동맹은 글로벌화에 따라 특정한 적국을 상정하거나 지역동맹을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한-미 동맹의 강화로 이웃의 강대국들간의 관계가 민감해지는 경향이 발생하는데에 크게 유의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제로섬(zero-sum) 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미중역시 상호간에 가장 중요한 국가가 서로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공히 우리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3) 대북인식과 작계 5029

한미동맹표류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한미양국간 대북인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동안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대북 화해와 협력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인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개혁·개방에 주저하고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에 대한 대처보다는 미·북간의 중재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관심은 쿠테타나 재해 등 긴급사태가 북한에서 발생할시 핵무기나 핵물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다. 그러한 프로젝트(북한에서의 소요 또는 대규모 탈북사태 등)에 대한 대응조치를 담은 한미연합사의 작계 5029와 관련 참여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주권을 제약한다’라는 이유로 거부하자 한미간의 대북정책에 관한 인식차의 골은 매우 깊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을 제외한 주요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관련국들 간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전략동맹체제를 배경으로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한·미의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긴밀하고 다각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4)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미양국은 금년 12월 4일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재협상을 통해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내부적으로도 충분한 검토가 더욱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전환 논의는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한국군과 미국군이 각각 독립사령부를 설치하고 양군간 협력을 위한 군사협조본부를 두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현대전의 양상으로 보았을 때 각자 독립된 이원적 지휘 구조로는 최대한의 전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러한 병렬적인 지휘 구조를 갖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군이 지상군을 모두 철수할 수 있는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5) MD 도입 고려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맹국들에게 핵공격에 대한 억제력으로 핵우산을 제공하여 왔다. 하지만 냉전이후 미국의 전략사상은 핵보복이 아닌 방어를 통한 억제력(defensive defence)를 제공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 억제력의 핵심을 MD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MD는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하고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우선 한국은 주변국들이 공히 핵무장이나 핵무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MD가 중국, 북한 등을 자극하여 지역의 군비 경쟁을 초래할 이유를 들어 MD체제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한을 사정권으로 하는 800여기의 탄도미사일을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 MD 체제에의 참여문제는 전략동맹 구축의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5. 결 론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 역사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제시대의 해방, 미군정시대의 오래, 6.25사변, 월남파병, 장갑차사고에 최근에 광우병파동에 이르기까지 군사적인 부분을 넘어서 문화적인 부분도 우리 삶에 매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많은 연구가들의 주요 주제였으며 다양한 의견과 논제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한·미 동맹의 패러다임은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에 이은 구소련의 붕괴로 수십여년에 걸친 미-소 대결구도의 해체로 인하여 큰 전환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이후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 세계경제의 성장,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등의 원인으로 세계외교의 헤게모니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9.11 이후의 테러리즘과 범세계적 상호의존성의 강화, 국제금융위기로 또다시 새로운 미래적 외교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한·미동맹을 넘어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놓았으나 정부출범 1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한·미관계와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변화 하였는가.

우선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대립과 갈등만 증폭시켰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을 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사과도 받아내지 못하고 개성관광도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UN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을 넘어 발의자로 적극 관여한 일을 통하여 내정 간섭 혹은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간주되었고 수십만 명의 촛불시위도 막아낸 정부가 대북 인권단체의 삐라살포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우리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의지를 의심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수세에 몰린 북한 정권이 주민 기간 단속 차원에서 주민 동원과 교육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남북관계가 역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은 현 정부 들어 단 한건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만들어진 금강산 면회소 건물은 빈 채로 남아있다.

다른 다자간 외교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국의 FTA 협상은 협상국과 국민 모두에게 지탄을 받게 되었고 전략동맹의 큰 그림을 그린 조지 부시가 레임덕을 마치고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 오히려 통미봉남을 자초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외교의 부재’의 시대에서 우리는 다시금 한번 외교란 무엇이며 안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사와 병행해온 미국과의 협력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간 한·미관계는 지배자로 동반자로 협력자로 다양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변화된 사회와 문화의 요구에 발맞추어 21세기 전략동맹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원론적 입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당사자들간의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건설적인 연구가 계속될 때 한·미 양국의 관계는 더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끝.

 

 

 

참고문헌

 

박봉규, 동북아 전략환경 변화와 한·미동맹, 평화와 안보, 창간호(2004) 

윤덕민,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방향과 과제, 외교안보연구원, 주요국제문제분석 08-26호 

홍현익,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1년에 대한 평가와 제언, 정세와 정책 2009년 3월호 

최 강, 한미동맹 현황과 발전을 위한 과제, 외교안보연구원, 주요국제문제분석 08-23호 

최 강, 신정부의 한미‘전략동맹’발전을 위한 과제, 외교안보연구원, 주요국제문제분석 08-04호 

홍현익, 21세기 한국의 국가안보전략과 한·미동맹, 세종연구소, 세종정책연구 08년 제4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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