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학의 관점으로 본 베토벤
아래에도 나와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초월한 "혁신(Innovation)"을 지향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금에야 베토벤의 음악을 "CLASSIC"이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를 정리하고 낭만주의의 문을 연 매우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차있다.
그에게는 특히 -많이 꾸며진 이야기도 많지만- 달빛 창가에서 피아노를 치던 장님 소녀를 위해 작곡했다는 월광소나타(OP.27-Nr.2)의 이야기나 귀가 멀어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못듣다가 악장이 그의 팔을 잡고 알려줘서야 청중들의 호응을 알았다는 등 상당히 미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유년기 부터 천재로만 자라온 모짜르트와 비교되어 평생을 고독하게 자라온 그의 대비적 인생도 그런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노동사회학적 관점에서 그의 가장 큰 의의는 음악을 권력에서 '독립'시킴으로서 창작자의 권리를 주창한 최초의 작곡가라는데에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한 시도는 있었겠지만 음악사적인 위치에서 봤을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그였기에)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은 여가와 향락, 안식을 위한 도구였지 그것 자체가 치열한 노동, 사회적 생산, 3차산업을 논하는 도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general industry에 비하여 인프라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예술은 기득권들의 특권이 되었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 배경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바흐는 평생을 교회에서만 있었고(교회의 후원), 모짜르트는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에스테르하지 백작이 없었다면 하이든이란 작곡가는 빛을 바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를 두지못했다면 멘델스존의 음악이 이처럼 럭셔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스폰서들의 후원에 종속된 대다수의 음악가들에 비해(물론 베토벤도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발트슈타인 백작도 한 예가 될 듯) 그는 평생을 독립적인 활동을 했으며 자신의 악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 가난한 음악가였다. -마치 미술에서의 고흐처럼- 그의 음악은 생전에는 지금처럼 큰 빛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오늘날엔 그렇게 Trend에 쫓아가지 않은 그의 창조적 활동이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그러한 행동이 빛을 발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단순한 행동양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의 모습이 감동을 배가해주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교육열에 소년 베토벤을 혹사시킨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청년 베토벤이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그의 삶은 이전까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클래식을 대중이 더욱 공감하게 하였고, 청력을 상실한 후 작곡된 그의 말기 작품은 그를 '천재'로 국한한 모짜르트와 달리 '악성(樂聖)'이라 불리게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적 요인이 그를 유명하게 한 제 1원인은 결코 아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노라면 이러한 설명은 모두 유명무실 해지고 왜 그가 악성이라 불리는지 공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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